어떻게 국가에 환원할 것인가?
누군가 나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 물으면 난 항상 우당 이회영 선생을 얘기한다. 이회영 선생은 경술국치 이후 당시 모든 재산을 팔아 소 13,000마리(현재 시세로 600억 원이라고 하지만, 당시 소의 값어치를 생각하면 2조 원가량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값을 마련해 온 집안이 만주로 이주했다. 이후 경학사와 신흥강습소 건립에 참여하는 등 해당 돈을 모두 독립운동하는데 활용했으며, 독립운동에 온 재산을 쏟아부어 재산이 8년 만에 바닥나 "일주일에 3번 밥을 하면 운수가 대통"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어려운 삶을 살았다.
어렸을 때부터 국사를 좋아해서였는지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애국심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애국심을 가질 때면 항상 '그 당시에 있었다면 나는 독립운동에 참여했겠는가?'를 묻고 망설이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일말의 고민도 없이, 만주로 이주해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사실이, 그 정도 돈을 가지고 있다가 밥도 못 먹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굴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존경을 넘어 경외심을 갖게 만들었다.
나는 학교를 다닐 때도, 사업을 할 때도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 더 쉽게 할 수 있었고, 그래서 더 많은 꿈을 꿀 수 있었고 결국에는 그 꿈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를 다닐 때는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학교를 다닐 수 있었고, 현실적인 제약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었다. 사업을 할 때는 특히 정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정부지원사업이 아니었으면 사업을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 정부지원사업을 통해 실패를 할 수 있었고, 실패를 통해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실패 이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냥 자신의 능력 때문에 받은 돈이라 생각하고, 어차피 지원금이니 우습게 보겠지만 나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돈은 목적에 의해 조성된 것이고, 그 목적은 한국의 미래 유망 산업 발굴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다. 나아가 이를 통해 국가 경쟁력을 발전시키고, 외화를 벌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산업에 작은 끝이 보이는 일을 의도적으로 피해왔다. 그런 지원을 받았으면, 궁극적 목적에 부응할 수 있는 결과를 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일신의 안위를 위한 성공은 애초에 정부지원의 의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많은 사람의 우려 속에서 아주 크고 어려운 시장을 타겟했다. 고객과 서비스의 메커니즘을 모르는 상태에서 타겟하는 큰 시장은 불가능 그 자체였기에 더 큰 실패를 거뒀다. 하지만 그만큼 더 넓은 관점에서 시장을 바라보고 고객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무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숲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게 되었다.
유동성 파티 속에서 돈의 가치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시장 경제 사회는 늘 수요와 공급을 따르지만, 가치는 수요와 공급을 따라선 안된다. 하지만 돈의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투자라는 행위의 가치 또한 낮아졌다. 정부의 지원 의도가 담긴 스타트업 투자라는 행위(스타트업으로 들어오는 돈 절반 이상은 국가가 주는 돈이니까)는 단순히 돈 넣고 돈 먹기의 게임이 아니라 국가의 존속과 번영에 이바지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아직도 난 그 시절에 있었다면 모든 걸 다 버리고 독립운동을 했을 것이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 어차피 역사에서 가정이란 무의미하기에 지금 어떤 대답을 하던 무의미할 것이다. 그저 가진 것도 없이 사업을 시작한 나에게 자금과 함께 미션을 준 국가에 어떻게 하면 더 잘, 더 많이 환원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그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