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사물성과 총체성

건축은 결국, 사물과 사람에 대한 이해를 근간으로 체계적인 총체성이란 관점에서 사물과 사람에 대한 이해와 해석의 작업이다.
건축, 사물성과 총체성

사물, 집 짓기의 구체성

 
풍수지리는 비과학적이며 미신의 대상이지만 때에 따라 맹신. 혹은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생각하는 등 다양한 시선이 존재한다.
하나의 대상에 대해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는 이유는 구체성을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전통에 대한 막연히 좋은 것이라는 태도는 사실 전통의 발전을 가장 저해하는 요소로 작동된다. 한옥이 현대적 계승에 실패한 원인도 이와 유사하며, 풍수지리에 대한 과학적 해석과 비판 없는 수용 역시 마찬가지이다.
소위 역술적 해석은 도인들의 뇌피셜로 반복되기 경향이 많기 때문에 미신과 맹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풍수지리는 기후, 자연환경의 문제를 포함한 거주성에 대한 전통적 사유체계 및 방법론이라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표현 방법이 다를 뿐 과학적 사실 관계와 무관하지 않은 내용들도 적지 않다.
봉황, 용, 학, 어머니의 자궁 등은 풍수지리의 본질과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며, 대상의 구체성과 전혀 무관한 특징 집단의 관념 체계에 불과하다.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은 여행지 중 하나가 산토리니(티라)섬이다.
지중해의 일몰과 풍경을 만끽하기 위해 찾는다고 하지만, 지중의 일몰과 풍경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대체로 불가능하다.
감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산토리니 특유의 일몰 풍경은 발칸반도 남쪽 섬들의 자연 환경적 특성과 광학적 속성이 빚어낸 현상이라고 설명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상의 구체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객관적 사실 관계를 포함하여 역사적, 지리적, 사회적 해석을 포괄적으로 검토, 해석될 수 있어야 한다.
 
산토리니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크레타 등 지중해 문명과 그리스 본토의 지정학적, 역사적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화산 폭발로 인한 지층 구조, 지형, 지질 특성 및 자연환경은 현재 산토리니 풍경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요소들이다. 화산재는 땅뿐만이 아니라 바닷속 생물 분포와도 연관성이 있으며 에게 블루(Aegean Sea Blue)라고 하는 특유의 바다 색깔까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화성암과 화산재 성분을 활용한 플라스터(Plaster)는 산토리니에서 건축물 축조 방법의 중요한 요소이다. 화산 폭발이 없었다면 산토리니의 건축물은 전혀 다른 건축물이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물성의 총체성이 산토리니 건축물의 형태와 분위기를 규정하게 되며, 풍경과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구체적 내용들이다.
 
산토리니(티라) 섬
산토리니(티라) 섬
 
단순히 아름다운 석양을 보기 위해 산토리니를 방문한다면 이러한 구체적 사실들에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겠지만, 산토리니의 집과 건축물,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구체성은 이해의 근간이 되는 사실들이다.
어떤 대상이든 사물성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예비 건축주라면 집 짓기에서 진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장인 혹은 소위 믿을만한 사람들을 찾고자 한다. 내 집을 지어줄 사람이 진실하고 신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일 것이며, 이유는 진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집을 지어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의 이면에는 일반인들 입장에서 집 짓기의 다양하고 복잡한 여러 구체적인 내용을 일일이 알 수 없기 때문에 작동하는 반증적 생각들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진실함’과 ‘좋은 집’은 반드시 등식 관계로 성립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진실하기 때문에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다 말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에 명당이란 말과 유사하다.
산토리니의 집들은 정말 아름답고 좋을 집인가. 혹은 어떤 장인이 믿음과 신뢰로 지어진 집인가. 또는 지중해 스타일의 집이란 이런 것인가 등의 답변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올바른 해석일 것이다.
집 짓기와 건축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은 대체로 객관적 사실에 대한 구체성에 비해 막연하고 사실과 무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대부분 추상적이지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들은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편이다. 추상적인 것들에 관해 설명해야 한다면 또 다른 추상적인 것으로 대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당이 있는 집, 따뜻한 집, 건강한 집, 숨을 쉬는 집, 아름다운 집, 모던한 집 등 집에 대한 표현은 수백 가지 표현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러한 표현들이 집의 본연의 가치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구체화한다는 것은 기술 및 공학적 사실관계 등을 포함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기반으로 짓는 행위 일체와 이를 통해 실현되는 장소와 공간, 사람의 다양한 감정과 심미적 속성 등을 체계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이러한 구체화 과정에서 더는 소거할 수 없는 사물성, 거주성 등과 같은 대상이 결국 집 짓기의 본연의 가치이다.
사물성과 구체성은 단지 현실과 괴리된 이론이거나 본질적인 가치만을 추구하는 관념적 대상이 아니다.
 
한양 풍수를 예로 든 배산임수와 장풍득수와 같은 이야기들은 일반적인 설명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설명으로 경주, 개성, 평양의 풍수는 전혀 설명할 수 없다.
경복궁에 해당하는 반월성 근처에서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한양의 좌청룡, 우백호와 같은 산줄기는 찾아볼 수가 없다. 구산선문 선종 사찰은 물론 통도사, 부석사, 실상사와 같은 대찰의 가람 역시 한양의 풍수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한반도는 알프스와 같은 거대한 산이 아니라 국토의 70%가 밀도 높은 산줄기들이 복잡하게 군집하고 있는 산악 지형임을 이해해야 한다. 당연히 유럽의 기후와 전혀 다른 기후 특성이 있다.
 
쉽게 말해 한반도에서는 광활한 지평선을 볼 수 없으며, 강원도 산골이 아니더라도 첩첩산중인 곳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사계절의 극심한 온도 차와 계절풍 등의 기후 환경 역시 고유한 특성이다.
지형과 기후의 표상
지형과 기후의 표상
notion image
 
이러한 사물의 구체성은 장소의 구체성이며 삶의 방식은 물론 집 짓기 방식과 건축 방법론 역시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독특한 점은 이러한 복잡한 산줄기를 해석하는 방법은 산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산이 아닌 것들을 해석하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이 아닌 것은 물줄기(수계)이며, 물줄기를 체계화하면 -평지, 분지 역시 수계의 범주- 산줄기의 체계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사계절의 기후 환경은 이러한 지형 특성과 더불어 한반도만의 구체적이고 독특한 자연환경 속성이 되는 것이다.
대상 자체뿐 아니라 사물의 체계와 연관된 장소와 공간, 사람의 삶과 연계된 마을과 도시 등의 상호 관계성에 대해서 소흘하지 않다.
풍수지리의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표현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특성을 표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또한 산줄기의 높고 낮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산줄기와 물줄기 간 상호 관계의 체계와 관계성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면밀하게 다루고자 하는 것이 풍수지리이다.
 
 
사유를 통해 각종 사물의 구체성을 인지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대상의 구체성을 인지하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구체적 사실에 입각한 접근 방식들이 오히려 비현실적이고 모호하게 보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비교 견적의 금액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견적서가 내포하고 있는 실질적인 내용과 견적서에 포함할 수 없는 내용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 하지만 견적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금액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일 것이다.
 
건축가의 건축가라는 수식어가 있는 건축가 피터 줌 토르는 포스트모던의 삶은 각 개인의 삶 너머의 모든 것이 모호하고 흐릿하며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상태라고 설명한다.
상징과 정보가 가득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없으며, 상징과 정보는 또 다른 것들의 상징과 정보이며 진짜는 숨어 있어 아무도 진짜를 본 적이 없는 채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나는 진짜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땅, 물, 햇볕, 경관, 식물, 인간이 만든 물체, 기계, 공구, 악기는 분명 존재한다. 예술적 메시지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며 각각이 분명한 존재감을 지닌다.*
 
줌 토르에게 건축의 구체성은 사물에 대한 사유와 해석임을 인지할 수 있는 부분이며, 이러한 사물의 구체성은 건축이란 대상을 이해함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진실, 좋은 집, 잘, 착한 건축 등 이상적 가치를 믿음과 신뢰라는 비현실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보다, 집은 사물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사물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사물 그 자체기도 하다는 구체성에 대한 문제 인식이 필요하다.
 
사물(The Thing)은 다소 형이상학적인 질료(Matter)의 문제로부터 구체적인 재료(Material)의 문제를 포함한 객체(Object)의 속성(Property), 기술과 제품(Goods), 상품(Product) 등의 개념을 포함한다.
또한 기호학적 소산에 이르는 일련의 성과물 일체가 건축에서 논의되는 사물의 범주이며, 건축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자연환경(Natural Environment) 이란 개념 역시 사물의 범주이다.
이처럼 집을 구성하는 대부분 가치는 이러한 사물과 사물의 구체성에 기인하고 있으며, 사물에 대한 이해가 곧 집에 대한 이해이다.
 
 
구체화하여 생각해 본다는 것은 기술 및 공학적 사실관계 등을 우선 포함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기반으로 짓는 행위 일체와 이를 통해 실현되는 장소와 공간,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심미적 속성 등을 체계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이러한 구체화 과정에서 더는 소거할 수 없는 사물성, 거주성 등과 같은 대상이 결국 집짓기의 본연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러한 구체화의 과정 및 생각은 집 짓기의 다른 어떤 방법, 가치관보다 유용하고 합리적인 대상일 수 있다.
 
사물성과 구체성은 이론적이고 본질적인 가치만을 추구하는 개념이 아니다. 집은 물론이고 현대사회가 부여하는 사물의 새로운 가치에 대한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 사물의 기능은 전적으로 사용 가치(유용성) 혹은 상징적 가치에만 한정되는 개념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물을 구체성이란 관점에서 하나의 기능 체계, 조직 속에 통합되는 능력이다.**
 
 
 

사물의 총체성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과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오래전 역사적 흔적들이 자연 풍경과 더불어 삶과 사물에 대한 입체적이고 감각적인 분위기가 더해져 있다.
이러한 풍경과 분위기는 종종 시적 감흥과 낭만, 찬양적 수사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물리적 구체성을 근간하지 않고 성립할 수 없는 것들이다. 물론 고유한 분위기는 구체적인 사물의 물리적 속성만으로 발현되는 감각은 아니다.
역사적 흔적과 삶의 기억, 사물에 내재한 형이상학적 속성들의 적층 등 여러 요소가 지속 가능한 체계성을 통해 획득될 수 있을 때 발현될 수 있으며, 이러한 감각적 대상을 사물의 총체성이라 할 수 있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과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과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건축 역시 각종 재료, 자연환경 등의 범주를 포함한 구체적 사물을 기반으로 구축된다.
집 짓기 과정에서 사용되는 재료의 범주는 건축주 혹은 건축가가 임의로 선정할 수 있겠지만 각종 기준과 규준, 성능과 품질 등의 물성을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건축물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후 및 자연환경의 차이로 인해 같은 재료, 디테일이라도 외국에서 전혀 문제없던 것들이 국내에선 문제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경량목구조는 탁월한 체계성을 가지고 있는 공법임이 틀림없지만 환경과 사회적 실정이 다름으로 국내 실정에 맞는 체계성이 필요하다. 수입된 지 20년이 이상 된 방법이지만 목구조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한 이유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체계적으로 발전하지 못했고, 그로 인한 리스크 등이 시장에서 결과적으로 외면받는 이유가 되고 있다.
재료와 디테일의 문제에 대해 유행이나 개인적 취향,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방법이다.
 
종종 설계 도면만 있으면 직접 집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겉모양만 똑같으면 된다는 기준이라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건축물이 갖추어야 할 복합적인 기준과 성능 요소를 만족한 일반인들의 집 짓기는 대체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라면조차 내가 끓인 라면과 쉐프가 끊은 라면의 맛은 차이가 있다.
집 짓기에서 세심하고 면밀한 이해와 총체화는 마법의 만능 라면 스프로 해결할 수 없는 고유한 속성이 있다. 집 짓기는 짓는 행위 뿐 아니라 삶을 재구성해 보고 일상적 가치를 포함한 무형의 대상까지 일련의 건축 행위와 과정에서 총체화될 수 있어야 한다.
거주함이란 인간과 주어진 환경 사이에 의미 있는 관계성의 설정이라는 슐츠의 설명은 사물의 관계성을 총체화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델포이 신전과 아크로폴리스와 같은 장소를 도면이 있다고 해서 똑같이 지을 수 있다는 생각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장소의 감각적인 분위기는 도면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사물에 대한 이해와 구체성을 기반으로 사물의 관계성을 총체화 하는 것이 건축 행위이며, 델포이와 아크로폴리스 역시 당대 문명의 총체화된 소산으로 인식해야 한다.
 
 
모더니즘의 속성은 획기적이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전문적이고 기능적인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경향이다. 하지만 총체성은 기발하고 획기적이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델포이 신전과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같은 장소에 대해 기발하고 획기적이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실현된 건축이나 도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생각과 정반대의 생각들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시대의 삶과 사물, 현상, 관계성에 대한 이해와 성찰을 통한 결과라고 해석해야 한다.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라는 관점과 같은 자의성을 배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입체적인 감각적 흔적으로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자의적인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았겠지만, 오랜 시간을 통해 남겨진 것은 결국 자의적이지 않은 것들이다.
고성 까사델아야 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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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의 기능과 품질의 문제 역시 총체성 일부이며 디자인과 디테일 역시 사물, 사물의 관계성에 대한 총체화 과정의 결과물이다.
현대 건축은 건축물의 각종 성능과 품질, 물리학적 속성 등 객관적 사실관계를 체계적으로 총체화할 수 있어야 하는 전문성이 필요한 대상이다. 공간과 장소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며 거주성은 건축의 총체적 특성 그 자체이다. 결국 사물과 사람에 대한 이해와 성찰의 문제로 귀결된다.
 
근대의 속성 중 하나는 개별 영역의 분화된 전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집 짓기 현실 역시 건축 이외에도 토목, 조경, 가구, 구조, 설비, 전기, 통신, 소방 등 전문 엔지니어링의 조력은 필수이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건축과 관련된 많은 전문가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고 가히 전문가 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집 짓기 현실에서 분화된 개별 영역의 전문성보다 이를 하나의 가치로 통합할 수 있는 가치가 훨씬 중요하다. 통합의 의미는 개별 전문 영역을 단순히 배열, 조립, 링크하거나 단순히 더하기 빼기 하는 것과는 다른 체계적 총체화를 의미한다.
델포이 아폴론 신전과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를 보고 기술자와 전문가가 만든 도시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체계적으로 총체화된 문화적 소산이기 때문이다.
 
건축가마다 다르지만, 실내 공간 계획에서 가구는 가구 전문가에 의해 이후 단계에서 상세하게 계획한다는 명분으로 개략적인 배치 정도로 건축 계획의 다음 스텝으로 남겨두고 설계가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양양 부띠크 빌라 비온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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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구 계획은 사용자의 라이프 스타일, 각종 수납계획, 사용자 특성 등이 면밀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만큼 건축 계획의 다음 스텝이 아니라 건축 계획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이다.
가구뿐만이 아니라 우오수계획, 대지의 안정, 조경 등 건축 계획에서 다음 스텝으로 남겨둔 것들 대부분은 건축 계획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대상들이다.
조경 계획 역시 건물을 배치하고 남는 공간에 적당히 주인이 좋아하는 식재 몇 개를 골라 심는 것으로 주택에서 조경의 가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건축 설계 단계에서 공간 계획과 더불어 체계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다.
 
이러한 개별 전문성이 단절된 건축 설계 프로세스는 체계적인 총체화라는 관점에서 지양해야 할 프로세스이다. 건축 설계 과정에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건축가들 역시 건축의 특정 개별 영역에 전문화된 이유이다.
건축가들이 탐닉하고 있는 디자인은 엄밀하게 형태 중심의 조형론에 가깝다. 문제 해결 과정이란 관점의 디자인과 이러한 조형, 의장론은 엄밀하게 전혀 다른 대상이다. 좋은 말로 전문성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냉정하게 파편화된 전문이며 체계적 총체성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건축가의 전문성은 기능적, 직능적 전문성이 아니라 건축적 대상은 물론, 사물과 사람에 대한 총체화된 체계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설계 및 시공 행위에 있어 체계적인 총체화 역량이 중요한 이유는 한둘 아닐 것이다.
잘 보이지 않는 집의 성능과 품질에 관련된 부분 대부분 체계화된 총체성의 문제이다. 겉모습만 예쁜 집이 아니라 주택으로써 갖추어야 할 성능과 품질, 거주하는 장소로써 갖추어야 할 삶의 다양성과 구체성, 고유한 분위기와 감각의 문제는 체계화된 총체성이란 관점에서 세심하게 설계, 시공될 때 온전한 가치를 발현할 수 있다.
 
 
 

* 피터 줌토르 저, 장택수 역, 『건축을 생각하다』, 나무생각, 2014, p.16.
** 장 보드리야르 저, 배영달 역, 『사물의 체계』 백의, 1999,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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