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스타일의 문제

건축엣 스타일의 문제는 형태적 문제가 아니라 대상에 대한 의미 작용의 문제이다.
건축, 스타일의 문제
 
집 짓기를 쉽게 접근하는 방법으로 스타일(Style)이란 관점이다.
예를 들어 ‘심플하고 깔끔한 모던하우스’ 혹은 ‘북유럽식(스칸디나비아) 디자인’ 등과 같은 표현이 있다.
집은 물론이고 소위 카페 인테리어 혹은 숙박시설이나 펜션 등과 같은 상업적 목적의 건축물이라면 이러한 스타일 문제는 더욱 중요한 문제로 인식한다. 장소와 공간의 스타일 문제가 목표한 목적 사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성 까사델아야 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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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집 짓기, 건축 행위에서 스타일의 문제를 일종의 경향, 목적 행위에 대한 방법으로 인식하는 것은 다소 주의가 필요하다.
어떤 스타일의 집이 유행한다거나 어떤 스타일의 장소가 손님들이 많이 찾는 분위기라고 이야기하는 방식은 가장 손쉬운 방법일 수 있으나 적지 않은 오류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스타일은 형식(Form)이란 개념과 유사하며, W. 타타르비키비치의 <형식: 한 가지 용어와 다섯 가지 개념의 역사>라는 글을 통해 형식이란 개념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형식이 내용(content)의 반대말로서 취해질 때 형식은 외적 양식(form)을 뜻하게 되며, 소재(matter)의 반대말로 사용될 경우 형식은 형체(shape)로 간주하며, 요소(element)가 반대말이라면 배열, 배치라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개념, 의미, 뉘앙스로 통용되고 있으며 일종의 모호한 의미 작용으로 설명하고 있다.*
 
스타일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스타일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의미 작용이 발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일을 복제, 재현한다고 해서 똑같은 의미 작용이 수반되는 것이 아니다.
이효리의 스타일을 복제, 재현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이효리에게서 발현되는 의미 작용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의미 작용은 주체의 고유한 경험, 사물의 감각, 지각을 통해 체화되기 때문이다.
 
ALC 블록에 유기질 단열재와 스터코로 마감하고 스페니쉬 기와를 올린 집을 소위 지중해식 스타일 집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어렵지 않게 지을 수 있는 집의 모습이지만 거주 공간인 집이 갖추어야 할 고유한 의미 작용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형식미적 탐닉으로 하자투성인 집 짓기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사실 지중해식 스타일이란 이유보다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집 짓기 방식이었기 때문에 유행했다고 설명함이 타당하다. 한때 유행했지만, 요즘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구조 방식이 ALC 블록이기도 하다.
기대했던 지중해식 스타일의 의미작용은 당연히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으며, 스타일에 대한 맹목적 재현과 복제에 대한 결과는 치명적인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어떤 연예인의 맵시 있는 패션이 유행하는 것은 스타일의 문제라기보다 이벤트적 사건이다.
똑같은 패션이라도 이효리의 패션과 나의 패션은 똑같을 수가 없다. 단순한 기계적 복제이며 자기만족일 뿐, 구체적인 의미 작용과 전혀 무관한 기계적 코드일 뿐이다.
동일한 방식, 유사한 느낌으로 반복되는 성형수술을 미(美) 혹은 스타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란 뜻이다. 물론 어떤 핸디캡, 신체의 물리적 리스크를 제거하기 위한 성형 외과적 혹은 피부과적 조치는 분명 필요한 방법이다.
 
유심히 관찰하면 과거와 달리 연예인들의 이러한 성형외과 및 피부과적 행위는 캐릭터의 고유한 분위기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성형외과 및 피부과적 행위가 영화 속 스크린 필터를 통해 표현될 때 자칫 기계적인 복제로 비칠 수 있고, 이는 감독들이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근래 연예인들은 콧등을 세운다거나 깊숙한 쌍꺼풀을 만드는 것과 같은 형태, 형식의 문제보다 피부 자체의 물성적 가치 - 우윳빛 피부 - 에 더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행위가 QLED 화질 스크린 속에서 스타일리쉬함을 표현하는데 훨씬 더 유익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을 위한 집짓기든 특정 목적을 위한 상업적 공간이든 이치는 크게 다르지 않다. 스타일의 문제를 어떤 형태나 형식적인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은 맹목적인 기계적 복제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성이 다분하다.
많은 손님이 찾기를 바라는 핫-플레이스를 만들고자 하지만 생각만큼 장사가 잘되지 않을 수도 있고, 투자비 대비 수익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스타일에 관심을 두는 것은 궁극적으로 스타일을 통해 일어나는 의미 작용이지 스타일 자체가 아님을 상기해야 한다.
 
 
의미 작용은 어떤 기계적 스타일이나 독창적인 형태, 선험적인 텍스트, 교조화된 수사 등으로 발현되지 않는다. 인문학을 가장한 콘텐츠 역시 소비되는 기표에 불과하며 유행처럼 한때 지나가는 이벤트로 전락하기에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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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를리-퐁티(Merleau-Ponty)의 설명을 차용하자면 의미 작용은 주체의 감각과 지각을 통해 스스로에게 체화될 수 있을 때 발현할 수 있다. 스타일의 문제뿐 아니라 예술 작품, 추상적 개념, 이성적인 합리성 등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는 선험적 사유나 추상화된 개념 등에 의해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장면 하나하나가 시간적, 공간적 배열을 통해 전체의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어떤 대상을 경험한다는 것은 어떤 인식이나 지성의 판단 작용, 혹은 시각적 작용이 아니라 지각의 차원에서 체화될 수 있을 때 의미 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영화와 같이 어떤 대상을 경험, 감상한다는 것은 일종의 - 신체적 - 지각이다.
 
흔히 건축, 인테리어, 가구 등의 범주를 시각 디자인으로 분류하거나 소위 스타일, 양식사적 설명으로 구분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지만, 메를리-퐁티의 설명에 의하면 전혀 무관한 것들이다. 어떤 조형적 형태를 만드는 것은 침묵의 목소리일 뿐 장소와 공간에서 의미 있는 작용은 지각된 체화(신체)를 통해 발현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집과 건축은 타인의 지각을 공명할 수 있어야 하며, 보편적 공감 작용으로 작동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공간과 장소가 될 수 있다.
 
결국 스타일, 형식을 통한 의미 작용의 구현은 이해와 공감의 문제로 귀결되며 건축 디자인의 가치는 이러한 관점에서 재설정이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관점은 건축에서 전통적인 방법과 전혀 다른 설계 방법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많은 건축가가 너무나 당연하게 행하고 있는 고만고만한 설계 방법론은 전향적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
영화를 예로 들었다고 해서 집과 건축을 마블 시리즈나 스타워즈 시리즈처럼 만들 수도 없을 것이며, 건축 디자인 고유의 구체적 방법론에 대해 다양한 가치 정립이 필요할 것이다.
우선 집과 건축에 대한 전형적인 가치, 개인적 편향된 주관, 합리성을 가장한 이성 등 자의적인 판단을 주의해야 하며, 사물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이러한 사물의 관계성, 체계성이 개인에게 체화되어 작용하고 있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 W. 타타르비키비치 저, 손효주 역, 『미학의 기본 개념사』 中 <형식 : 한가지 용어와 다섯 가지 개념의 역사>, 미진사, 1997, p.257~282.
** 메를로-퐁티 저, 권혁민 역, 『의미와 무의미』, 서광사, 1985,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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