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화된 장소, 상품화된 건축

과거와 달리 건축은 기능과 예술의 범주를 벗어나 기호화된 장소와 상품의 범주에서 건축 산업을 동력으로 새로운 가치를 모색해야 한다.
기호화된 장소, 상품화된 건축

기호화된 장소

 
건축 사학자 및 비평가들은 건축과 도시를 논하고자 할 때, 장소는 공간의 문제와 더불어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대상이다. 건축, 도시 분야 뿐 아니라 장소에 대한 다양한 인문학적 논의들은 이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담론이기도 하다.
 
이러한 진중한 논의들과 무관하게 일상생활에서도 장소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카페와 집은 어떠해야 하고 미술관과 관공서는 어떠해야 하는지 등의 표현은 이제 누구나 말할 수 있고 누구나 평가할 수 있다.
핫-플레이스라는 단어는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검색 알고리즘에서도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관련된 연관 검색어 사용권 획들을 위해서는 적지 않은 노력과 비용이 수반되어야 한다.
 
양양 부띠크 빌라 비온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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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 공간에 비해 장소는 구체적이고 친숙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대상에 대해서는 표현을 주저하지만, 구체적이고 친숙한 대상에 대해서는 표현을 주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주택과 같은 개인적인 장소는 물론이고 미술관이나 관공서와 같이 다중이 이용하는 장소에 대해서는 그 표현에 있어 주저함이 없다. 특히 카페와 같은 상업적인 장소에 대해서는 수많은 표현이 교차함을 인지할 수 있으며, 일상생활과 밀접할수록 표현은 구체적이고 다채롭기 마련이다. 이러한 양상은 소위 문화라는 층위를 통해 다양하게 확대 재생산되기도 한다.
 
 
피렌체를 흐르는 아르노강 10개의 다리 중 가장 오래된 다리가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이다.
강폭이 가장 좁은 이곳에는 로마 시대부터 나무다리를 설치해서 시민들의 통행을 돕도록 했으나 홍수로 다리가 자주 유실되자 1350년 지금의 석재교량을 완성하였다. 1442년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다리 위 양쪽에 점포를 만들어서 정육점, 가죽 가공점, 철공소 등 상인들이 장사할 수 있도록 했고 비좁은 공간 탓에 상인들이 제각각 임의로 공간을 늘리다 보니 외관상 다소 불규칙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1549년 아르노강 건너편에 있는 피티 궁전(Palazzo Pitti)이 완성되자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에서 옮겨간 코지모 1세는 자신의 신변 보호 목적과 두 궁전을 오갈 때마다 상인들과 뒤섞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점포 위에 전용 통로를 만들면서 다리 위 점포는 증축하게 된다.
점포 위 통로는 피티 궁전에서 지금의 우피치 미술관(당시 메디치가의 집무실)까지 이어진 비밀 통로인 회랑이다. 그 후 1593년 베르디나도 1세는 베키오 다리 1층 상점에서 풍기는 도축장의 고기와 가죽 냄새가 싫다고 그들을 대신하여 냄새를 풍기지 않는 금은세공 상인들을 입주시키게 되는데, 이로써 베키오 다리는 피렌체의 고급 쇼핑거리로 변모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피렌체에서 퇴각하는 히틀러조차 아르노강의 다른 다리는 모두 폭파하지만 베키오 다리만큼은 남겨두고 철수했다.
여기까지는 베키오 다리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다.
 
베키오 다리, 피렌체
베키오 다리, 피렌체
 
하지만 베키오 다리가 사람들로부터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단테의 영원한 사랑인 베아트리체와의 만남의 장소로 회자되기 때문이다. 사실 베키오 다리가 단테와 베아트리체와의 만남의 장소였다고 해서 앞서 언급한 역사적 사실이 달라지거나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은 이-푸 투안의 방식처럼 공간과 장소를 조직하여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며, 슐츠의 로마를 해석하는 방식처럼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를 해석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과학자들이 해석하는 – 오직 인간에게만 발달한 – 소위 문화라는 층위로 장소를 인지한다는 의미이다.
쉽게 말해 건축이나 도시의 대상을 기호화된 장소로써 인지하는 경향이 다분하며, 기호화된 장소는 멀리 있는 베키오 다리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가까운 곳에서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는 가상이 아닌 현실이다.
 
어느 어촌마을의 빈집이나 폐가에 가까운 오래된 주택을 소위 감성적인 가구와 빈티지한 인테리어 컨셉으로 리모델링한 소규모 상점이나 카페, 펜션 등은 더 이상 낯선 장소들이 아니다.
장소는 디자인과 기획이란 행위를 통해 웹 브라우저 정중앙에 풀 사이즈 사진과 감성적인 스토리 라인이 가미된 텍스트가 더해져 오래된 주택이란 장소는 전혀 새로운 장소로 – 그리고 장소가 아닌 콘텐츠로 – 이미지화한다.
동시에 또 다른 대상으로 재생산되는데 어느 숙박 예약 플랫폼 한쪽에서 검색 키워드와 함께 가상의 세계에서 부유하는 이미지가 된다.
사용자가 플랫폼의 댓글과 후기를 참고한 후 예약 버튼을 클릭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도록 해야 하며 주저함 없이 클릭하게 하는 만드는 것이 현대의 건축술이 고려해야 하는 목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택은 공학적으로 건축물의 안전에 대한 그 어떤 검증 과정도 거치지 않은 위험한 건축물일 수 있다. 백색 벽면 위에 노출된, 오래된 서까래는 구조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지진과 같은 외부의 물리적 요인에 매우 취약한 건축물이다.
소규모 리모델링의 대부분 애초부터 구조계산서 등이 필요한 건축 인허가 대상을 피해 기획되기도 한다. 합당한 절차를 통해 진행하고자 해도 현행 법규상의 문제로 행위 자체가 불가한 경우가 많은 것도 문제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은 감성적인 가구와 빈티지한 인테리어 이미지가 가지는 가치보다 중요하지 않다.
 
 
문화적 가치와 이를 상품화하고자 하는 영리한 건축주는 디자인 행위가 탐닉할 수 있는 형식미를 첨가하여 장소를 소비의 대상으로 상품의 반열에 올려놓기에 주저함이 없다. 그리고 영리한 건축가는 건축술을 형식화, 코드화하여 장소를 통해 소비되는 기호체계에 부합하고자 한다.
건축은 소위 ‘핫 플레이스’가 되어야 하며, 장소는 단순히 기호에 머물지 않고 문화라는 담대한 현상으로 종속되어 간다.
단테의 운명적인 사랑이 시작된 베키오 다리에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 증표로 자물쇠를 채운 뒤 열쇠를 강물에 버리는 이벤트는 상품화된 문화라는 범주에서 장소와 건축이 형식화, 코드화되는 양상과 유사한 양태라 할 수 있다.
 
고성 까사델아야 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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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on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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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화, 코드화를 가장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이 ‘가부키(歌舞伎, 가무기)’라는 일본의 전통 연극이다.
가부키는 내용이나 극의 줄거리보다는 형식미 그 자체로 전성기를 누렸다고 할 수 있다. 대략 짐작할 수 있듯이 내용, 줄거리, 의미 등은 우리나라 아침 드라마와 같이 뻔한 구성이다.
하지만 가부키는 내용과 줄거리보다 표현 방식을 즐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상품화된 문화라는 범주에서 건축은 가부키처럼 표현 방식을 즐기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형식화, 코드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건축주와 건축가는 어떤 방식으로 장소를 만드는 것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공감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집중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종종 건축가는 철저히 배제되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등장한 공간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 마케터, 기획자임을 자부하는 이들이 이러한 장소를 만드는 영향력 있는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 속에서 건축은 다분히 하드웨어적인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이들의 목적은 소위 장소라는 상품 – 핫 플레이스 - 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대하는 유일한 의미 작용은 소비 – 여기서 소비는 화폐 위주의 경제적 소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 라는 행위가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스타용 포토존은 건축에 요구하는 중요한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상품화된 건축

 
이론적으로만 존재할 것 같았던 건축이란 대상의 복제 행위가 일상 현실에서도 나타난다.
웨이브 온 커피(Waveon Coffee)라는 건축물을 그렇게 멀지 않은 장소에 그대로 복제한 사례가 있다. - 한국일보 “100만 명 찾는 부산 랜드마크 카페가 1시간 거리에 또? 건축 표절 논란 - 소위 장사가 잘되는 공간과 장소에 대한 형태적 복제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이란 법적 문제를 논하기 전에 건축이란 대상이 기호를 통해 복제되고 있는 시대임을 반증하는 사례이다.
 
건축가의 입장에서 건축에 요구되는 상품적 목적들이 다소 불편한 요구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전의 건축은 역사적으로 상품이란 대상이 되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이러한 상황에서 건축은 건축 자체의 문제로 건축의 정체성을 찾아 나가야 함이 타당하겠지만 소극적인 건축가들이 피난처로 삼은 것은 건축 자체가 아닌 예술이다.
 
외국의 경우 건축의 영역이 산업과 융복합되어 건축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의 건축은 다소 한정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소 직설적인 표현으로 예술 지향 주의 건축가와 행정 대서사인 허가방으로 양분화되어 있다.
 
예술조차 화랑에서 거래되는 작품만이 공인된 미술품으로 전락한 마당에 예술화된 건축은 문화 상품이란 불편한 대상을 화랑의 미술품과 동일시 할 수 있는 명분을 부여받고 싶은 발상인 것이다.
 
과거의 건축은 회화와 비교되어야 하는 시대였지만 - 그 이전에는 건축은 다른 분야와 비교될 필요가 없었던 시대였다 - 현재의 건축은 영화와 비교되어야 하는 시대이다.
영화와 비교되어야 하는 자체가 건축은 기호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실재하는 감독과 배우가 있을지 모르지만, 영화 자체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가상에서만 존재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건축과 영화의 가장 큰 공통점은 산업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며 가장 큰 차이점은 실재하는 대상과 실재하지 않는 대상이라는 점이다.
 
어쨌든 건축의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 때문인지 일반인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장소에 대한 현실과 건축가가 설명하는 장소에 대한 설명은 전혀 다른 대상을 설명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기호화된 건축이란 대상이 바람직한지 혹은 바람직하지 않은지에 대한 논의는 – 과거의 건축이 어떠한 역사적 맥락에서 존재했든지 간에 – 무의미한 논의이다.
우리가 논의해야 할 점은 건축이 영화 산업처럼 산업화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일 것이다.
 
건축 역시 예술 품처럼 작품을 가장한 상품이지만, 건축가의 인식은 아직 예술 작품 같은 건축이 되고 싶은 것이다. 화랑에서 유통되는 미술품이라고 해서 모두 예술 작품이라고 단언할 수 없지만, 안타깝게도 건축가들은 화랑에서 유통되는 작품을 통해 일정한 지위와 명예, 명분을 얻는 작가가 되고자 하는 듯 하다.
건축 산업의 발전보다는 영화 산업의 부산물로 창조된 영화감독과 배우들의 지위와 명예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경향이 다분하다.
 
건축계에는 한국에서 프리츠커상을 받는다면 아마 내가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나의 목표는 프리츠커상을 받는 것이라고 호기롭게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으며 정부는 프리츠커상을 목표로 젊은 건축가들을 해외로 연수 보내겠다는 정책을 발표하기도 한다.
관심을 두고 주목해야 할 것은 프리츠커상이 아니라 공간과 장소, 건축 그 자체이다.
 
장소와 건축이 문화라는 범주에서 기호로 환원될 수밖에 없는 대상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건축은 건축의 모든 것을 기호로 환원할 수 없는 속성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건축은 작품, 상품에 대한 논의 보다 장소와 공간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현실 사회에서 나타나는 기호학적 현상은 사실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복제에 가까운 B급 문화이며 기계적인 코드에 가깝다.
유심히 살펴보면 제주도 어느 어촌마을 주택을 리모델링한 모습은 서울 북촌 한옥마을 민박집에서도 볼 수 있는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연남동 주택을 개조한 어느 카페의 모습과 망미동 주택을 개조한 어느 카페의 모습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가끔 새롭게 보이는 인테리어 디자인이 지나치는 사람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그조차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고만고만한 실내장식으로 전락하는 예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모니터 속 가상현실에서는 실제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구현되기도 하며 심지어 실제보다 훨씬 다채롭기까지 하다. 이러한 현상은 사진과 이미지, 텍스트 등으로 구성된 시뮬라크르(simulacra)의 착시효과 때문이다.
그래서 웹 브라우저 속에서 설렘이 있는 마음으로 마우스를 클릭하지만, 실제 방문하여 실망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시뮬라크르의 상품적 가치를 맹신하면서 공간과 장소에 대해 스타일이란 개념으로 치환하고자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카페와 숙박시설 모두가 장사가 잘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지 못한 비율이 훨씬 높다.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재현이나 복제는 우리가 기대했던 의미 작용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설령 정밀한 복제를 통해 기대했던 의미 작용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웨이브 온 커피’를 복제한 건축물과 같이 철거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슐츠와 이-푸 투안의 장소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유용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고성 까사델아야 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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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진보는 모든 것을 기호로 환원하는 날이 도래할 수도 있겠지만 당분간 모든 것을 기호로 환원할 수 없는 대상 중 하나가 건축이며 건축의 고유성이기도 하다.
또한, 가상에 대한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가치 추구는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와 같은 관광 산업을 창출할 수 있는 동력이 미흡할 수밖에 없다.
단테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단테의 신곡이 있었기 때문에 베키오 다리에 대한 스토리텔링 또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피렌체와 베키오 다리에 대한 이미지는 실재하는 사실, 실재하는 작품이 있었기에 - 피렌체의 역사, 문화, 수많은 건축 및 예술 작품 등이 실재하기 때문에 - 이미지를 넘어 산업화할 수 있는 지속적인 원동력을 갖는 것이다. 베키오 다리의 자물쇠는 가까운 남산 타워에서도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함축된 기저의 맥락은 엄연히 전혀 다른 대상이다.
 
공간과 장소라는 건축적 대상 또한 형식미만을 향유하는 방식으로는 건축의 유용한 존재 가치를 설명하기 부족하다. 건축 또한 산업화의 대상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소위 인문학적 기술이란 관점에서 기술에 대한 가치를 건축 면면에 다양한 방식으로 녹여낼 수 있을 때, 산업화한 건축은 비로소 인문학적인 건축의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성 베드로 성당, 로마
성 베드로 성당, 로마
 
 
 
물론 가부키처럼 극단의 형식미(formality)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건축 및 건축가의 역량도 필요하다. 이왕 이러한 관점으로 접근하고자 한다면 조형 예술(formative arts)과 같은 예술의 범주가 아니라, 건축 자체의 모습으로 건축 극단의 형식미를 보여줄 수 있다면 의미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건축적 형식미라는 것 역시 건축이 산업화하지 못하면 사실상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아부다비의 <루브르 아부다비(Louvre Abu Dhabi)>를 조형 예술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은 다소 무지한 접근 방법이며, 건축이 산업화하지 못하면 결코 지을 수 없는 건축물이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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