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와 거주, 집에 대한 의미 변화 

집에 대한 의미는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며, 집 짓기에서 장소와 거주의 문제는 이러한 의미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이자 방법이다.
장소와 거주, 집에 대한 의미 변화 

장소와 거주의 의미

 
집을 짓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생각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쉽게 생각하면 위치와 입지 등과 같은 상식적인 생각이지만, 장소와 거주의 문제는 삶의 근원적인 문제를 포함한 중요한 대상이다.
여행 중 마주치게 되는 작은 마을과 도시들은 입지와 위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장소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건축물 역시 그곳에 존재하는 고유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마련이다.
 
밀도 높은 현대 도시는 장소와 거주의 문제를 균질하고 보편적인 대상으로 치환하고 있지만, 도시를 떠난 삶을 생각해 본다면 장소와 거주의 문제는 전혀 다른 대상으로 작동할 수 있다.
구릉지 지형, 산악 지형의 집짓기가 각각 다를 것이며, 고온다습한 기후 환경에 짓는 집과 한랭 건조한 기후 환경에 짓는 집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자연환경, 도시와 전원, 사회적 건조 환경 등의 차이는 삶과 생활 방식을 규정하는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시에나
시에나
 
 
코로나 팬데믹은 보편성을 극대화한 도시의 전형적인 거주 방식에 대해 인식의 전환점이 되었다. 당연하게 혹은 어쩔 수 없었던 도시의 거주 방식은 전혀 다른 삶의 거주 방식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비로써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전원주택과 같은 탈-도시 주거방식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똑같은 아파트, 사무실이라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거주할 수 있다는 거주 방식의 다양한 가능성을 포함한 전향적인 생각의 전환을 의미한다.
아파트는 장소와 거주의 문제를 균질함과 보편성의 관점에서 극대화한 건축물이다.
문제는 균질함과 보편성이 아니라 극대화의 정도가 문제일 것이다. 도시의 주거 방식에서 아파트는 분명 필요한 주거 방식이지만, 거주성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특정 관점에서 유독 극대화된 것이 아파트의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아파트는 심지어 도시가 아닌 시골에 지어질 때도 그 양상이 도시와 똑같은 방식으로 지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모습이 독단적이지 아닐 수 없다.
 
건축론에서 장소와 거주의 문제가 삶 속에서 면밀하게 다루어진 적은 그렇게 많지 않다.
찬란한 건축사에서 조명되는 건축물 대부분은 신과 영웅, 특정 계급을 위한 건축물이며, 양식과 무브먼트에 기댄 건축물들에 대한 언급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근대의 도시, 사회 문제로서 장소와 주거의 문제가 조명되었던 적이 있기도 했지만, 사회적 관점에서의 접근이지 개인의 삶을 보다 근원적인 대상으로 다루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문명사를 통해 의미 있는 장소와 거주에 관한 논의 사례를 찾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현대 상가주택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로마 시대 인슐라(Insula)라는 주거방식 또한 재테크와 부동산 투기의 대상이었으며 날림 공사로 인한 불편함과 화재에 취약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나마 장소와 거주의 문제가 본격적인 사회 문제로 다루어진 것은 산업혁명 전후 발생한 도시문제를 통해서이며, 일상 시민의 장소와 거주의 가치를 중요하게 인식하게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장소와 거주의 문제가 일상 삶 속에서 중요한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다소 모호하고 구체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그 논의와 관심이 실제 얼마 되지 않은 담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담론들이 채 숙성되기도 전에 현대의 도시와 사회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비교적 가까운 일례로 하이데거의 ‘Dwelling’ 개념과 이를 건축적으로 해석, 발전시킨 노베르그 슐츠의 <거주의 개념>에서 장소와 거주에 대한 논의가 있지만, 이 또한 불과 100년 남짓한 사유들이다.
슐츠는 이미지(Image), 공간(Space), 성격(Character), 장소의 혼(Genius Loci)이란 체계를 통해 장소에 대해 실증적이고 유용한 현상학적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이-푸 투안(Yi-Fu Tuan) 은 공간적 질서를 통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때-조직된 의미 체계-장소라는 대상으로 변환되며 친숙해질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논의들은 분명 소중한 자산이고 여전히 유용한 가치로 존속하고 있지만, 100년 이후 엄청난 속도로 발전한 현대의 다양한 가치 체계 속에서 그 영향력과 효용성은 예전과 같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용인 문촌리 전원주택
용인 문촌리 전원주택
 
문제는 건축가들조차도 인문학적 사유를 수반한 장소에 대한 의미보다는 공간과 형태라는 전통적인 방법론에 여전히 익숙하다는 점이다.
 
장소, 거주의 문제가 삶의 근원적 대상이라고 하지만 근대건축의 중심 테제는 공간과 형태에 대한 문제였다. 공간의 문제는 사실 건축사의 오랜 관심이라기보다 계몽주의 이후 근대건축이 스스로 설정한 대상이다.
제의화된 이성을 기반한 근대건축은 종교와 같은 숭고한 대상의 설정이 필요했으며, 공간과 형태는 건축의 숭고한 대상으로 치환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에는 서양 중심의 이데올로기 문제가 한몫을 차지하고 있으며, 일방적 사고체계가 비판 없이 수용됨에 따라 - 그것도 일제강점기라는 비정상적인 상황 속에서 - 유난히 신념화, 제의화된 공간과 형태에 대한 관념이 만연하고 있다.
 
노출콘크리트라는 시공 방식은 우리나라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기후 환경에 부적합한 시공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공간과 형태적 미학에 사로잡힌 건축가들의 지적 유희와 탐닉 덕분에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관행적으로 설계, 시공되고 있다.
외장재의 기본 요건인 흡수율조차 만족하지 못하는 타일, 비구조 요소의 내진 기준에 부합하기 쉽지 않은 치장벽돌 쌓기 역시 건축가들의 형태적 가치 만족이 우선되고 있는 일례일 것이다.
르네상스 시절 창안된 투시도법적 공간 구성은 여전히 건축 설계의 중요한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여기에 근원을 알 수 없는 건축가 개인의 자의적 해석을 더 하여 건축을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물론 현대 건축에서 공간과 형태에 대한 여러 담론과 논의들은 분명 유의미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만, 과학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공간과 형태의 문제 이외에 다양한 양상으로 분화 발전하고 있음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집짓기의 고민 중 하나는 소위 '어디에' 살 것인지에 대한 문제이지만, 사실 '어떻게' 살 것인지에 관한 문제이다. ‘장소'의 문제는 '어디에(where)'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how)'의 문제이며, 이는 다름 아닌 '거주'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
아카데믹하고 숭고하며고 제의화된 공간과 형태의 문제는 학창 시절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이나 기억나지 않는 결혼식 주례사처럼 지극히 응당한 말이지만 실효성 있는 대안을 제시해 줄 수 없다.
 
학군, 역세권, 숲세권 등의 입지 여건과 인프라를 우선 고려하게 되는 아파트는 장소, 거주의 문제가 아니라 위치, 부동산적 가치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아파트 분양 광고 대부분은 각종 생활 인프라와 접근성에 대한 문구들로 채워져 있고, 도시의 단독주택, 비도시지역의 전원주택은 물론이고 타운하우스 등의 분양 광고 또한 아파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광고는 필수 불가결하고 당연한 결과지만, 아파트 공화국이란 오명과 부동산 중심의 주택 공급 등의 문제에서 구체적인 개인의 삶과 합리적이고 실효성 있는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한 경제학적 지표에 의한 공급 중심의 주택 정책은 개인 삶의 질과 무관하게 아파트라는 획일적이고 편향된 주거방식을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있으며, ‘거주함’에 대해 진중하게 생각할 기회마저 박탈하고 있다. 심지어 어렵게 집짓기를 결정하여 집을 짓고 있는 건축주 대부분 아파트에 근거하여 아파트와 같은 방식으로 집을 짓고 있는 처지이다.
 
장소와 거주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이유는 아카데믹하고 종교적 관념 및 경제성과 상품 가치만으로 집을 짓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부족함과 미련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장소, 거주의 문제는 다양한 담론 등을 포함하여 삶의 방식에 관한 생각이며, 삶의 의미 있는 가치를 발견하고자 함이다. 더불어 이러한 삶의 방식에는 의외로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으며, 집 짓기에 있어 구체적인 건축 방법의 문제까지 규정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낙소스
낙소스
수니온곶
수니온곶
 
 
장소의 의미는 추상적인 위치 이상의 물질, 형상, 재질 등 구체적인 사물의 총체성(totality)을 의미하는 것이다.* 주택이란 개념이 집의 물리적 속성을 중심으로 한 개념이라면 거주라는 개념은 집의 물리적 속성을 포함하여 소위 형이상학적 속성까지 포함한 개념이다.
물론 이러한 장소와 거주에 대한 논의들이 현대화된 도시의 집짓기에 얼마나 유용할 수 있을지 의문도 있지만, 공간과 형태, 집짓기에 대한 추상적이고 낭만적인 접근보다 실효성 있고 설득력 있어 보이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거주함을 인간과 주어진 환경 사이에 의미 있는 관계 설정의 문제로 인식하면서 정주지, 도시 공간, 공공 건축, 사적 거주 등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유용한 이야기들이다.*
장소와 거주함의 문제는 집, 집짓기에 대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법, 환경과 현상에 대한 이해를 근간으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집을 지을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를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사물의 총체성(totality)을 기반으로 환경과 현상을 이해하는 과정이며, 이러한 과정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거주함의 생각을 구체화할 수 있다.
 
 
 
 
 

집에 대한 의미 변화

 
장소와 공간, 거주와 일상 등의 문제와 무관하게 현대 사회에서 집에 대한 의미 변화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양상은 전형적인 부동산적 속성, 전통적인 집에 대한 인식 및 가치 등과 사뭇 다른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의미 변화 양상이 집에 대한 한 가지 목적과 기능에 대응하는 것으로 생각되던 과거의 방식과 달리 집에 대한 새로운 기능과 목적의 다변화 양상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거주의 의미가 인간과 환경의 의미 있는 관계 설정이라면, 집에 대한 의미 변화는 인간과 환경 간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전통적인 체계에서 사물은 대체로 한 가지 목적과 기능에 대응하는 것으로 정의되지만 현대 사회는 사물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고 전통적 사물에 대한 의미 작용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단독주택 하면 연상되는 '마당이 있는 집'이란 이미지는 머지않은 미래에 더는 단독주택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주택은 이미 다양한 거주성의 대상으로 재구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구도심의 슬럼화된 주택들을 리모델링하여 스테이, 카페, 작업실, 소규모 판매점으로 활용하는 것은 이제 익숙한 사례이다. 또한, 창고나 공장을 개조하여 작업실과 판매점, 주택, 문화 공간 등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 외에도 답답한 오피스텔이 아닌 아파트 저층을 집의 용도가 아닌 사무실로 사용하는 사례도 있으며, 주택의 일정 기능을 공유하면서 공동 거주하는 셰어하우스 역시 거주성의 다양한 의미 작용의 변화 사례이다. 더불어 3세대가 하나의 주택에 거주하면서 각자의 독립된 거주 공간을 확보하는 소위 3세대 주거와 같은 기능도 설득력 있는 주거모델로 제시되고 있다.
 
좀 더 세부적으로 수요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주방과 식탁은 이제는 밥을 지어 먹는 기능적 공간 이상의 다양성을 요구받고 있다. 이에 따른 가구와 인테리어와의 경계 없는 디자인, 새로운 기능적 사용성에 부합하는 개별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 부수적인 액세서리와 디테일 등, 주택의 세부적인 영역들까지 이러한 의미 작용의 변화가 수반되고 있다.
집, 주택이란 기호는 더는 우리가 생각하는 집, 주택의 의미로 머물지 않고,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다양한 의미 작용의 변화 과정을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양평 월산리 단독주택 ‘월산비정’은 전원주택이지만 마당이 없는 주택이다. 전원주택에 마당이 없다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지만, ‘월산비정’은 마당 대신 중정을 선택했고 마당의 기능은 옥상 정원이란 형식을 통해 대신하였다.
이러한 결과에 이르기까지 설계과정에서 건축주와 또 다른 삶의 방식이 가능하다는 점을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말이 쉽지, 전원주택을 지으면서 마당이 없다는 것은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주변인들의 시선에는 독특한 형태의 집이지만 ‘월산비정’의 공간 구성은 다양한 삶의 방식 중 하나일 뿐이며, 장소와 거주에 대한 총체적 해석의 결과일 뿐이다.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지극히 보편적인 집인 것이다.
 
양평 전원주택 월산비정
양평 전원주택 월산비정
 
 
단독주택 하면 연상되는 벽돌로 마감된 이층집이란 이미지는 지극히 도식적인 관습이다. ‘월산비정’은 대략 60평 규모지만 방은 2개 밖에 없는 집으로, 어떻게 방이 2개밖에 안 되느냐고 핀잔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2층 주택이 아닌 중정형 단층 주택은 의외의 편리성과 라이프-스타일의 유용함을 더 해줄 수 있는 방식이다. 저마다의 삶의 방식은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하며 이는 거주 방식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방식 이외의 다양한 거주 방식이 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집의 의미는 결국 장소와 거주의 문제로 ‘어디에’가 아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거주성이란 개념은 집, 주택과 같은 건축에만 적용되는 개념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가 일하는 작업 공간 역시 하나의 거주 대상이며 시간상으로 훨씬 많은 시간을 집이 아닌 일터에서 보내고 있기도 하다. 레지던스 개념이 수반된 오피스텔 및 호텔 등의 복합화 경향 역시 거주함에 대한 의미 작용의 변화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숙박 시설 역시 과거와 같은 단편적 기능의 숙박 시설이 아니라 디자인 펜션, 부티크 호텔, 스테이 등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는데, 이 또한 거주성에 대한 의미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 거주성의 다양한 의미 변화는 집은 물론 주택 이외에 공간에서도 다양한 거주함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양양 부띠크 빌라 비온후풍경
양양 부띠크 빌라 비온후풍경
 
장소와 거주성의 문제는 집에 국한된 문제만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근원적이고 구체적인 대상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주함에 대한 본연의 가치가 결여된 상황에 대한 인식의 전환인 것이다.
여기서 집에 대한 ‘본연의 가치’라는 개념이 집에 대한 ‘의미 작용의 변화’라는 속성과 다소 상충하는 개념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집에 대한 ‘의미 작용의 변화’라는 것은 실재하는 현상이며 집에 대한 ‘본연의 가치’라는 것 또한 어떤 고정불변의 영원한 진리를 찾고자 하는 의미가 아니다.
변화의 속성 자체가 본연의 속성이기도 하다. 삶의 근원적 대상이라고 해서 어떤 숭고함이나 추상적이고 관념적일 필요는 없다.
집에 대한 의미 변화는 전통적인 장소, 거주의 범주와 사뭇 다른 양상으로 발현되고 있다다. 단독주택이 더는 과거의 단독주택이 아닐 수 있으며 전원주택이 더는 과거의 전원주택이 아닐 수 있다. 집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며 변화할 수 있는 대상이며 장소와 거주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울과 같은 메트로폴리스는 이미 거주함의 당위성을 의심받기 시작하고 있으며, 코로나 팬데믹과 더불어 도시를 중심으로 한 전형적인 생활 방식은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을 추구할 가능성과 동력을 확보하고 있다.
도시를 떠난 삶을 당장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 하더라도 도시를 떠날 수 없는 도시의 거주성에 대한 새로운 방식은 이미 현실의 당면 과제이기도 하다. 장소, 거주의 의미는 변하지 않는 절대 진리와 같은 성격이 아니며, 집에 대한 의미 변화는 이미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고 있다.
집에 관한 생각은 어떤 고정불변의 관행이나 도식으로 한정할 필요가 없다.
살아가는 방식이 빠르게 변화하듯 장소와 거주의 문제 역시 다양한 가치와 가능성이 있기 마련이다. ‘벽돌 마감의 이층집’, ‘마당 있는 집’과 같은 집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만으로 집을 짓는다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지 모른다.
 
 

* 노베르그 슐츠 저, 민경호 外 역, 『장소의 혼』, 태림문화사, 1996, p.11.
* 노베르그 슐츠 저, 이재훈 역, 『거주의 개념』, 태림문화사, 1995, p.14.
* 장 보드리야르 저, 배영달 역, 『사물의 체계』, 백의, 1999,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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