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B2B 마케터의 화병 일기] 이거 보고 울지 말기

B2B 마케팅은 늘 외로운 싸움입니다. 영업 중심 조직 속에서 단기 리드 압박, 무한한 행사, 그리고 이해받지 못하는 브랜딩 사이에서 오늘도 버티는 마케터들. 이 글은 그들의 화병 일기이자, 우리가 왜 그래도 브랜드를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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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07, 2025
[어느 B2B 마케터의 화병 일기] 이거 보고 울지 말기

이번 콘텐츠는 B2B 커뮤니티에서 공감을 많이 받은 하소연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인블로그 팀은 B2B 마케터분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항상 응원합니다.

이번 콘텐츠가 만들어지게 된 B2B 커뮤니티에서의 하소연

오늘도 ‘이벤트 담당자’로 불린 B2B 마케터분들께

“그거 그냥 글 좀 쓰고 행사 준비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이 말을 듣는 순간, 내가 하는 일이 갑자기 작아진 기분이 듭니다. 한 손엔 노트북, 한 손으론 전시회 일정표를 붙들고 있는 우리.. 오늘도 ‘마케터’보단 ‘이벤트 담당자’로 불리는 날이 많죠.

대부분의 B2B 조직에서 마케팅팀은 소수입니다. 영업팀은 많고, 목소리도 큽니다. 대표님들도 주로 영업 커리어를 걸어오신 분들이라 “이번 분기 리드가 몇 개야?”라는 말이 “우리 브랜드는 어디로 가고 있지?”보다 먼저 나옵니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늘 애매한 자리에 서 있습니다. 영업을 돕고 싶지만, 단기 리드 수급만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브랜드’라는 단어를 꺼내는 순간 공기가 싸늘해지곤 하죠. 그래서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마케터인가, 아니면 이벤트 에이전시 직원인가.”

하지만 이 질문 속에는 분명한 답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히 행사를 준비하거나 글을 쓰는 게 아닙니다. 회사의 첫인상을 만들고, 브랜드의 신뢰를 쌓고, 보이지 않는 세일즈 퍼널을 설계하는 일. 그게 바로 마케팅이니까요.

영업팀과의 협업, 설득보다 ‘번역’이다

B2B 마케팅에서 가장 어려운 건, 콘텐츠 작성, 전시회 운영이 아니라 영업팀과의 협업이에요. 둘 다 ‘고객을 얻는 일’을 하고 있지만, 영업팀은 결과를 보고, 마케팅은 과정을 봅니다. 영업은 “이번 달 리드 몇 개야?“를 묻고, 마케팅은 “이 리드가 왜 생겼는지”를 따집니다.

문제는 이 언어의 간극이에요.

같은 데이터를 두고도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니 결국 “설득이 안 된다”는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사실, 이건 설득의 문제가 아니라 ‘번역’의 문제인 것 같아요.

영업팀에게는 ‘브랜드’보다 ‘전환율’이 먹히고, ‘콘텐츠 전략’보다 ‘CPL(cost per lead)’이 와닿습니다. 그래서 브랜드 캠페인을 설명할 때도 이렇게 말해보면 훨씬 효과적이에요.

“이 콘텐츠를 통해 얻은 리드의 전환율이 지난 이벤트 리드보다 2.5배 높습니다.”

“브랜딩 캠페인을 하면 영업에서 컨택할 때 리드 응답률이 높아집니다.”

영업팀은 스토리보다 숫자로 움직입니다.

그 숫자를 만들어주는 게 마케팅의 역할이라면, 그 숫자를 ‘영업의 언어’로 번역해 보여주는 건 마케터의 전략이죠.

커뮤니티에서도 이런 말이 있었어요.

“큰 회사도 똑같습니다. 구조의 문제예요.”

“이건 설득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 포기했습니다.”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에요. 하지만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면, 그 안에서 흐름을 바꾸는 게 마케터의 일이기도 합니다.

문제 해결의 3요소
문제 해결의 3요소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설득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데이터를 번역하고, 언어를 맞추고, 서로 다른 팀이 같은 숫자를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게 B2B 마케팅에서 진짜 협업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숫자만으로는 설득할 수 없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브랜드의 영역이죠

B2B에서도 결국 ‘브랜딩’이 답이다

숫자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숫자만으로는 사람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영업팀이 오늘의 리드를 만든다면, 마케팅은 내일의 리드를 기다리게 만드는 일을 하니까요.

B2B는 일반적인 B2C 소비재보다 의사결정이 훨씬 길고 복잡합니다. 한 번의 클릭보다, 오랜 신뢰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결국 브랜딩은 ‘리드 생성의 뿌리’가 됩니다.

“챗GPT 쓰면 하루면 되잖아, 왜 어렵다고 하냐?”

- 커뮤니티 어느 마케터의 현실적 하소연

누군가는 하루 만에 결과를 원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하루 만에 신뢰를 얻는 일이 아닙니다. 브랜드는 콘텐츠와 톤, 그리고 고객과의 모든 접점에서 쌓이는 인지적 자산입니다.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

이 자산이 쌓여야, 영업팀이 고객에게 연락했을 때 “아, 그 회사 들어본 적 있어요” 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 한마디가 전환율을 올리고, 리드를 살아 있게 만듭니다.

허브스팟, 세일즈포스, 노션 같은 브랜드가 B2B에서도 대체 불가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품의 기능보다 먼저, ‘이 브랜드는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죠.

브랜딩은 보여주기 위한 일이 아닙니다. 영업이 설득하기 전에 신뢰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마케팅의 진짜 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천천히 드러납니다.

단기 리드 성과보다 장기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B2B 조직의 마케팅 회의는 종종 이렇게 시작됩니다.

팀장님: “이번 분기 리드가 목표 대비 몇 개야?”

그리고 이렇게 끝나죠.

팀장님: “일단 이벤트 하나 크게 하자.”

나: ???

단기 리드 수급 중심의 마케팅은 빠르게 결과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빠른 결과는 대가를 남깁니다. 행사가 끝나면 다시 원점, 광고비를 끊으면 유입이 멈춥니다. 그렇게 매 분기, 마케터들은 불타는 캠페인 뒤의 잿더미를 치우며 다음 분기를 준비합니다.

커뮤니티에 이런 말이 있었죠.

“저희도 1년에 행사 15번 해요… 참고로 연 매출 50억 안 됩니다.”

“행사 할 때마다 초고속 노화해요.”

이건 단순히 체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벤트 중심 구조는 결국 브랜드 체력을 소모합니다. 고객에게는 일회성 자극만 남고, 조직에는 ‘다음에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잘못된 성공의 기억만 남습니다.

진짜 마케팅은 이벤트가 아니라 시스템입니다. 콘텐츠가 리드를 만들고, 리드가 다시 브랜드로 돌아오는 순환 구조. 그 구조가 자리 잡히면, 캠페인은 ‘불쏘시개’가 아니라 ‘가속기’가 됩니다.

단기 성과를 쫓을수록 팀은 피로해지고, 장기 구조를 설계할수록 브랜드는 강해집니다. 우리가 매번 한 철 벌고 한 철 먹는 이유는, 시스템을 만들기보다 행사에 기대기 때문입니다.

콘텐츠와 행사는 ‘결과’가 아니라 ‘프로세스’다

“그거 그냥 글 좀 쓰고 행사 준비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이 말을 들으면, 가볍게 웃으며 넘기지만 속으론 깊은 피로가 쌓입니다. 왜냐면 마케터의 하루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니까요.

글을 쓰기 전에 키워드를 분석하고, 콘텐츠를 올리기 전에 퍼널을 설계하고, 행사를 기획하기 전에 타깃을 세분화하고, 모든 결과 뒤엔 수십 번의 실험과 조정이 숨어 있습니다.

마케팅은 ‘결과’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결과가 나오게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입니다. 콘텐츠 하나가 끝이 아니라, 그 콘텐츠를 본 사람이 어떤 페이지로 이동하고, 얼마나 머물며,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끝까지 추적해야 합니다.

행사도 마찬가지예요. 그날 모인 명함보다 중요한 건, 그 사람들과의 다음 접점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입니다.

눈에 띄진 않지만 팀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하는 B2B 마케터
눈에 띄진 않지만 팀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하는 B2B 마케터

그래서 마케터의 일은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띄는 건 영업의 계약서와 이벤트의 현장뿐이지만, 그 밑에서 퍼널을 움직이고 브랜드를 이어붙이는 건 늘 마케팅이죠.

결국 콘텐츠와 행사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우리의 진짜 일은 모든 접점을 하나의 여정으로 만드는 일, 즉 회사를 시스템으로 움직이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도 오늘은 브랜드를 만든다

화가 나고, 지치고, 때로는 허무합니다.

회의를 마치고 나면 ‘이게 마케팅인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매일, 브랜드를 만듭니다.

B2B 마케터 분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B2B 마케터 분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그 브랜드는 멋진 로고나 세련된 카피가 아닙니다. 고객이 우리 회사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작은 인상, 영업팀이 전화를 걸 때 들리는 “아, 거기 아는 회사예요.” 그 한마디가 바로 우리가 만든 브랜드의 흔적입니다.

커뮤니티에서 한 마케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회사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나요.

그래서 ‘이건 나를 위한 커리어다’라고 생각해요.”

맞아요.

결국 우리가 쌓는 브랜드는 회사의 이름으로 시작되지만, 그 속에는 우리 각자의 이름이 남습니다. 내가 쓴 문장, 내가 만든 캠페인, 내가 버텨낸 하루가 모여서 ‘브랜드’를 만들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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