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 13, 2023

롱블랙에 나왔던 <고도식>을 직접 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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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블랙에 나왔던 <고도식>을 직접 가봤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위해서 수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내게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일 중 하나가 웨이팅이었다. 티켓팅이나 한정판매 등은 만족도를 확실히 얻을 수 있는 일들과 달리 맛집 웨이팅은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땅바닥에 내다 버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기대감은 높아지는데, 맛집은 너무나도 주관의 영역이라 올라간 기대감을 완벽히 충족시켜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의 웨이팅 후기를 보면, 이렇게까지 기다려서 먹을 정도는 아니라는 평이 종종 보인다. 실제로도 몇 번 속는 셈치고 웨이팅을 했을 때마다 그저 그런 경우가 많았다. 몇 번의 경험이 아니었지만, 나는 웨이팅하는 맛집에 대한 기대감 자체를 걸지 않았다. 함부로 속단했다.
 
하지만 마케터로 일하면서, 내가 보는 세상의 시선은 조금 달라졌다. ‘웨이팅하는 식당은 가지 않아’라는 기존의 에고를 잠시 접어두고, ‘왜 사람들이 저기에 줄을 서가며 밥을 먹을까?’라는 호기심의 눈으로 바라보자고. 맛집의 기본은 맛이겠지만, 나는 그 식당을 자주 가는 데에는 ‘맛’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전반적인 서비스 경험이 좋으면, 좋은 경험으로 남아 다시 방문하게 되는 곳이 있으니까. 맛에 대한 생각들은 QQJJ의 영향으로 많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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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정동우 대표가 직접 운영하는 고도식에 가게 되었다. 송리단길에 위치한 고도식은, 기획자에 머물던 정동우 대표가 직접 운영해보자 마음 먹고 만든 고깃집이라고 한다. 여기에만 파는 특별한 메뉴가 있다면, 알등심인데, 뼈가 붙은 돼지의 등심 부위를 구이로 판다. 알등심의 뜻은 ‘알짜배기 등심’이란 소고기 용어를 섞어 만든 것으로 가브리살이 붙은 뼈 쪽 등심만 골라내서 대중적인 상품성을 더한 거라고 한다. 소 한 마리당 2점만 나오는 아롱사태처럼, 이 부위도 돼지 한 마리당 네 부분만 나오는 귀한 부위라고 한다.
 
일요일 1시쯤 갔는데, 앞에 12팀 정도가 웨이팅을 하고 있었다. 테이블링이나 그런 서비스는 따로 사용하지 않고 무조건 웨이팅리스트에 이름을 적고 기다려야했다. 식당 왼편에는 웨이팅하는 분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고, 직원 분께서 이름을 호명하면 들어가서 먹을 수 있는 구조였다. 재밌는 건, 리스트를 작성할 때 미리 고기 주문을 하고 들어간다는 점이다. 고기만 미리 주문하고, 사이드는 안에서 따로 주문하는 방식이다. 자신의 이름을 직접 적는 방식이라, 글씨가 괴발새발이면 직원 분께서 읽지 못하고 당황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난 대략 1시간 정도의 웨이팅을 하고 나서 들어갈 수 있었는데, 리스트에 적어두고 자리에 없던 팀이 4~5팀 정도 되었다. 다른 곳에서 다른 일 보다가 오는 느낌이었는데 난 ‘꼭 먹어야겠어’라고 다짐을 했다면 그냥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앞에 팀이 자리에 없어 내 순서가 당겨진다는 사실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이면서, 너무 큰 변수다. 차례가 되었을 때 전화로 알려주면 모르겠지만, 시간 알차게 쓰겠다고 주변에서 시간 보내다가 내 차례 보내면 정작 먹고 싶었던 음식은 못 먹고 또 기다리게 되니까 손해라 생각되었다.
 
옛날 감성과 요즘 감성을 적절히 섞은, 뉴트로와 잘 어울리는 내부였다. 기본 찬으로는 백김치, 콩나물 무침, 파무침, 무절임, 고기의 맛을 더해주는 각종 양념들이 나왔다. 달궈지고 있는 팬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고기를 기다리다가 찬 류를 하나씩 맛을 보았는데, 이게 왠걸 진짜 맛있었다. 찬을 하나씩 맛보며 계속 오.. 맛있다라는 말을 계속 연발했다. 마른 포같은 걸 부셔 놓은 게 있어서 먹어봤는데 짭쪼름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나중에 고기를 먹을 때 설명을 해주실 거 같았지만 너무 궁금해서 뭔지 물어봤는데 북어포소금이라고 한다. 고기를 먹을 때 소금 찍어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 북어포소금은 짭짤한 맛을 가지고 있으면서 일정 염분도를 넘겼을 때 느껴지는 쓴맛이 전혀 나지 않아서 좋았다.
 
고기는 직원 분께서 직접 구워주셨다. 노릇노릇하게 맛있게 구워지는 알등심을 바라보며, 어떤 맛이 날지 머리 속으로 상상했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설명을 듣고, 다 구워진 알등심을 입으로 넣었다. 넣었을 때 첫 느낌은 ‘맛있다’ 알등심이라 불리는 부위는 돼지고기지만 소고기의 식감을 자랑했다. 함께 구운 파와 먹으면 그렇게 찰떡일 수가 없었다. 서비스로 나온 순두부찌개는 왠만한 순두부찌개 전문집보다 맛있었다. 보통 고기를 주력으로 내세우는 집들은 찬이나 서비스로 나오는 음식들이 그저 그런 경우가 많았는데, 많은 곳에 세세하게 신경을 썼다는 게 느껴졌다. 찬들이 맛있다 보니, 고기를 천천히 먹게 되었는데 돼지고기의 등심이라서 그런지, 어느정도 식었을 때는 등심 특유의 퍽퍽함이 느껴졌다.
 
그 외에는 고기 말고 다른 사이드 메뉴를 시켜먹어봤는데, 땅콩비빔칼국수와 된장술밥을 시켰다. 땅콩비빔칼국수는 일반적인 비빔국수와 달리, 땅콩과 바질페스토가 들어가 있었다. 입맛 없을 때 입맛을 돋우는 맛이 시큼한 맛인데, 그 맛있는 절묘한 시큼한 맛을 잘 살렸다. 바질페스토와 땅콩가루가 조화롭게 이뤄져서 고소함과 시큼한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운다. 된장술밥은 고기가 들어간 진한 된장찌개에 밥을 함께 넣어서 나오는데, 밥을 따로 시킬 필요가 없을 정도로 넉넉한 양을 자랑한다. 감자도 통크게 들어가 있어서 감자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더욱 맛있게 드실 수 있다.
 
정동우 대표가 기획한 다른 식당들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웨이팅한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돈이 아깝지 않고 시간이 아깝지 않을 수 있구나를 느꼈다. 손님으로 기다린 시간이 모두 잊힐정도로 훌륭한 맛이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오고 싶다는 생각과, 누군가 대접을 하고자 할 때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러운 식당이었다. 탄탄한 기획으로 쌓아올린 외식업은 그 자체로 만족도를 높일 수 있구나.
 
겨우 고기 한 번 먹고 그러냐고 할 수 있지만, 나는 고도식에서 한 끼를 먹기 위해 투자한 시간, 투자한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던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 잠실을 다녀오며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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