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지향 의사결정에 대하여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가 있었습니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그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단기지향 의사결정(short-terminism)이 세계적으로 만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업 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서, 단기지향 의사결정에 대한 생각을 작성해보려 합니다.
Dec 04, 2024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가 있었습니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그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예상되는 부작용을 애써 배제하는 단기지향 의사결정(short-terminism, 이 글의 용어를 의역)이 세계적으로 만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느꼈고, 이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최근 많은 기업들이 장기적 비전보다는 단기적 이익에 집중하는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100%는 아니지만, 단기지향 의사결정은 대부분 미래의 부채를 수반합니다. 제품이나 솔루션의 질보다는 마케팅에 더 투자를 한다거나, 분기별 실적에만 집중해 겉보기에만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드는데 급급하다거나, 이익을 높이기 위해 연구 개발 예산을 삭감한다거나, 핵심 인력을 해고하는 등의 행위가 그 예시입니다. 이러한 행위가 단기적으로는 비용 절감을 통해 재정 상태를 안정화시키는 것 처럼 보일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혁신 역량 저하나 인재 유출같은 장기적인 부채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앞서 예시로 든 한국과 러시아의 사례는 기업 차원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두 대통령의 정확한 의중을 알 수는 없겠지만, 대통령으로서의 정치적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근시안적인 선택을 했다고 평가 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자본주의 하에서 생산되는 담론들 중 여러 조직의 지도층에 의해 해이하게 채택된 담론이 여러 사회에 전염된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보면, 단기지향 의사결정은 작은 조직보다 큰 조직에서 더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단기적인 결정은 구성원의 대다수가 쉽게 납득할 수 있고, 직관적이고, 그렇게 하면 당장의 성과 목표는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죠. 반면, 장기적인 결정의 장점이나 단기적인 결정의 부작용을 설득하려면 복잡한 논리가 필요하며, 이미 한 차례의 의사결정으로 인해 '심플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담론이 만연한 조직에서는 이러한 설득이 힘을 잃기 쉽습니다.
상대적으로 큰 조직일수록, 복잡한 구조로 인해 의사결정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들은 남들이 하는 결정을 따라하는 경향이 생기고, 그 결과 다수의 선택이 ‘심플한 것’으로 동질화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기적인 성과는 일시적인 눈속임을 통해 가짜 안정감을 줄 수 있을지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큰 조직에서의 단기지향 의사결정은 작은 조직의 그것보다 위험할 수 있습니다. 가용한 수단은 훨씬 많은데,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개인의 책임감은 훨씬 더 희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또한 조직의 목표와 수단의 실행이 훨씬 다양한 차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목적과 수단을 1:1로 매칭시키는 단기지향 의사결정이 초래하는 외부효과가 더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 데이터 중심 의사 결정이 빠르게, 때로는 왜곡되어 도입되면서 신속한 결론 도출이 최우선 과제가 되고 있는 것도 현재의 풍조에 한 몫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극단적으로는, 최선의 대안을 빠르게 결정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 가장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유일한 대안 외의 추가적인 대안을 생각하지 않기도 합니다. 한 가지의 대안만 생각하다 보니 그에 대한 근거만 선택적으로 찾게 되고, 이로 인한 결과가 도래했을 때 그 대안에 대한 비판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게 됩니다.
미래를 위한 투자 부족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집니다. 현대사회가 아무리 예측이 어렵다 하더라도, 조직과 국가는 장기적인 비전을 설정하고 이에 기반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합니다. SK하이닉스는 연구에 대한 노력을 지속해 오면서 현재의 위상을 얻게 되었습니다. SK하이닉스는 HBM(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을 빠르게 선점했고, 지속적으로 R&D에 투자하여 반도체 산업의 강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참고 기사). 단기적 비용 절감보다 미래 시장을 준비하고자 하는 전략이 성공적으로 작동한 사례로 볼 수 있으며, 단기적 성과에 얽매이지 않는 리더십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경제적 양극화가 뚜렷해지면서 '나만 잘 살면 돼'라는 풍조가 개인 차원 뿐만 아니라 조직, 국가 차원에서도 널리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앞선 세대가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현재의 경제, 정치, 문화적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의 우리는 과거에 도움 받았고, 미래에 빚져 있습니다. 물론 경기 침체 속에서 당장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선택을 지속한다면 조직과 사회의 미래는 더욱 불확실해질 것입니다. 이는 현재의 지도층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미래 세대에 비용을 전가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장기적 비전과 지속 가능한 접근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일의 우리를 생각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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