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말하기가 어려운 이유

생각보다 어려운 '쉽게 말하기'에 관하여
Jul 30, 2023
쉽게 말하기가 어려운 이유
가끔 일을 하다 보면 ‘어렵게 말하기’가 얼마나 쉬우며, 반대로 ‘쉽게 말하기’가 또 얼마나 어려운지 경험하곤 합니다. 보통 저 아닌 타인과 협의하거나 이해관계에 있는 상대를 설득할 때가 그런데요. 물론 물 흐르듯 유려하게 소통이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개인적으론 아쉽게도 실상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필터링 하지 않은 이야기 전달은  저 칠판과 다름 없다.
필터링 하지 않은 이야기 전달은 저 칠판과 다름 없다.
사실 ‘어렵게’ 말하기 위해선 제 머릿속에 있는 지식이나 관련 전문 용어를 그냥 토해내듯 쏟아내면 됩니다.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신경 쓰지 않은 채 필터링 과정 역시 딱히 필요하지 않으니, 쉽죠. 반대로 ‘쉽게’ 말하기 위해선 생각보다 많은 체력을 요합니다. 내 지식이 상대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머릿속을 한 바퀴 돌려 쉽게 풀어 말하거나, 혹은 비슷한 예시를 들면서 상대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눈으로 계속 살펴보는 등 두뇌와 온 감각을 총동원해 상대를 살피며 에너지를 소모하는 과정이기 때문이죠. 이렇게 대화가 고전을 면치 못할 때 어느샌가 제가 스스로 점검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1. ‘누구의’ 입장에서 쉬었나?

한참을 공들여 말했는데, 상대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을 때처럼 맥이 빠질 때가 없죠. 그럴 땐 저도 모르게 ‘내 얘기가 어려웠나?’라는 생각이 들고는 했는데요. 가끔은 반대로 ‘내 얘기가 얼마나 쉬웠나?’로 바꿔 질문하면 생각보다 쉽게 풀릴 때가 있습니다. 사실 제 얘기가 어렵건 쉽건, 그걸 제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끝이 없다는 것인데요. 적어도 내 얘기를 통해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선, 상대의 머릿속에 있는 언어로 다가가야 더 쉽게 풀릴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Point of view, 줄여서 ‘POV’라고도 하죠. 보통 마케팅에서 관점의 이동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곤 합니다. 즉, ‘상대의 시야에서 바라보라’는 건데요. 어쨌든 저는 상대가 아니니 100% 상대의 시선으로 저를 바라볼 순 없겠지만, 이는 적어도 ‘상대를 이해해 보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습니다. 보통 상대는 다릅니다. 각자가 경험한 상황이 다르고 그 과정에서 누적된 경험치로 같은 세상을 각자 다르게 바라보죠. 그러니 같은 얘기를 해도 충분히 다른 방향을 향할 수 있고,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는 데서 ‘쉬움’은 시작되죠.

2. 예시를 가져온다.

그러니까, 보노보노로 시작해서 반지의 제왕으로 끝나길 바라시는 거죠?’
그렇지만, 아무리 상대의 언어를 가져온다 한들 이야기가 쉽게 풀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엔 여기에 더 시간을 쏟는 것보다 쉬운 예시를 가져오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죠. 한 예로, 예전 대행사 재직 당시 한 광고주 요청으로 Owned Media의 채널 컨셉을 웹툰 형식으로 준비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로선 웹툰에 대해 경험이 많지 않았기에, 광고주가 웹툰이라는 폼 안에서 어떤 그림을 그려나가고 싶은지 명확히 알아야 했죠. 월 1회였던 미팅은 주 1~2회로 늘어났고, 실마리를 잡기 위한 컨셉 회의에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을 때 즈음, 막연히 던졌던 질문은 예상외로 물꼬를 트여줬습니다. 이어 만화 <보노보노> 속 친구들은 자사의 다른 제품이 차지했고, 영화 <반지의 제왕> 속 주인공 프로도의 여정은 저희의 입맛에 맞게 조율되었습니다. 물론 제한된 예산 안에서 말이죠.
 
의견 대통합 뒤 대략 내 표정
의견 대통합 뒤 대략 내 표정
이처럼 때때로 대화 속에 가져온 ‘예시’는 끊어졌던 이야길 이어주거나, 서로 다른 상대가 한곳을 바라보게끔 잡아주는 고마운 역할을 하곤 합니다. 물론 이때 가져올 예시는 가급적 많은 대중들에게 익숙하면서 인지도가 높은 소재일수록 더 좋은데요. 그래야 상대의 뇌 어딘가에서 명확히 생성된 이미지가 좀 더 명확한 피드백을 불러일으켜, 앞으로 진행하는 방향을 좀 더 예리하게 깎아나갈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때에 맞춰 적절한 예시를 가져오기 위해선, 그에 앞서 마케터가 충분한 Input은 필수입니다.

3. 같이 복기한다.

가급적 전 비즈니스적 중요도가 높은 대화나, 자칫 다르게 전달되면 뒷수습에 더 번거로워질 법한 소통 시 그 자리에서 상대와 복기를 하려는 편입니다. 혹은 멀리 떨어져 전화나 메신저를 주고받았다면, 이메일로 Summary 해 상대에게 다시 대화 내용을 짚어드리고는 하죠. 보통 이럴 경우 별다른 답변이 없거나, 반대로 본인이 생각했던 바와 달라 처음 서로 공감했던 때의 대화의 궤도로 다시 잡아놓곤 합니다. 이렇게 보면, 사람은 충분히 입체적이며 복합적인 듯합니다. 무려 몇 시간이나 같은 대화를 하고도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 가있는 상대를 마주할 때면 말이죠. 때문에 가급적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이후에도 같은 대화가 ‘쉽게’ 이어지길 바란다면, 대화 후 자리를 벗어나지 않은 채 복기해 혹여 새 나간 의견 차이가 없었는지 돌아보고, 상황상 어렵다면 자리가 끝난 뒤 상대에게 다시 한번 리마인드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보통 요즘은 그걸 ‘일잘러’라고도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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