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영화가 있나요?

지극히 개인적인, 영화 <인셉션>, <머니볼>과 마케팅의 상관관계에 대해
Jul 28, 2023
좋아하는 영화가 있나요?
가끔 킬링타임용 대화가 필요할 때 상대에게 묻거나, 혹은 자주 들을만한 질문이죠. 손에 꼽을 만큼 인상 깊게 봤던 영화로 상대방의 세계관을 들여다보는 것도 꽤 흥미롭지만, 저 역시 몰랐던 영화를 알아가는 그 나름대로의 재미를 느끼곤 합니다. 저 같은 경우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항상 두 가지 영화로 답하곤 하는데, 그게 바로 영화 <인셉션>과 <머니볼>입니다.

1. 인셉션(INCEPTION)

영화 <인셉션>은 벌써 몇 번이고 돌려 봤지만, 정말 볼 때마다 새롭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상상력과 그 밑그림을 입체적으로 채워주는 주·조연들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하는 생경함마저 들곤 하죠. 영화는 주인공 일행이 타겟의 비밀을 훔치려는 시퀀스로 시작합니다. 이내 타겟이 고객으로 바뀌며 굵직한 메인 스토리로 이어지는데, 결정적일 때마다 긴장감을 쥐어잡으며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주인공 ‘돔 코브’와 그의 아내 ‘멜’의 이야기인데요. 가장 깊은 꿈에서 벗어나기 위해 직접 아내에게 인셉션을 새긴 남편 코브와, 이를 알지 못한 채 이미 깨어난 현실에서 다시 꿈으로 ‘깨어나려는’ 아내 멜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INCEPTION> 2010.07.21
<INCEPTION> 2010.07.21
‘작은 꿈을 하나 심었지, 모든 것을 바꿀 단순하고 작은 꿈을’
물론 영화 <인셉션>의 각 장면 연출과 상상력은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죠.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위 주인공의 서사를 볼 때면 가끔은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마케팅, 혹은 브랜딩 그 어딘가와 조금은 닿아있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상대가 모르게 무의식에 방을 만들고 그 안을 스스로 채워 넣지만 사실 이 모든 건 브랜드가 의도한 대로 디자인되었다는 것을, 결국 다시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것. 그렇게 저항 없이 심어진 씨앗은 주관이 되고, 그 주관을 주체적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인셉션의 본질이 어쩌면 브랜딩의 본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INCEPTION> 2010.07.21
<INCEPTION> 2010.07.21
그렇게 영화를 대여섯 번쯤 돌려 보았을 때 문득 들었던 제 본업과의 연관성은, 제게 마케터로서 스스로를 자꾸만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내가 만든 방이 고객의 의식과 무의식중 어디에 들어앉아 있을지, 무의식에 있다면 그 방안을 채워 넣는 건 누구일지 하는 그런 질문들 말이죠. 비록 현실 세계에선 드림머신(Dream Machine)도 없고 극중 유서프의 ‘약물의 힘’을 빌릴 수도 없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고 싶지만, 어쨌든 뿌리부터 탄탄하고 건강한 브랜딩을 꿈꾸는 마케터라면 반드시 필요한 마인드 셋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2. 머니볼(MONEYBALL)

두 번째 영화 <머니볼>은 메이저리그 실사를 기반으로 한 작품입니다. 그럴듯한 야구 영화로 보이지만, 실상 이 영화는 ‘수’를 기반으로 한 전략 영화에 가깝죠. 그도 그럴 것이 경영학 서적 ‘머니볼’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는데, 얼마 전 마침 재밌게 봤던 <스토브리그>와 참 닮아있습니다. 영화는 메이저리그 만년 최하위 ‘오클랜드 에슬레틱스’팀의 처참한(?) 경기 장면을 보여주며 시작됩니다. 곧 팀은 실력 있는 선수를 하나둘씩 뺏기고, 단장이자 주인공인 ‘빌리 빈’은 트레이드를 위해 방문한 상대 팀 사무실에서 우연히 만난 ‘피터’를 채용하게 되는데요. 경제학을 전공해 숫자로 야구를 바라보는 피터와 과거 잘나가던 에이스로 주목받던 주인공 빌리, 둘은 곧 기존 야구의 판을 뒤집고 그들만의 새로운 룰을 만들어가게 됩니다.
 
<MONEYBALL> 2011.11.17
<MONEYBALL> 2011.11.17
‘투구는 블랙잭과 같아, 패에 따라 상황이 변하지. 첫 투구가 스트라이크면 타율은 75포인트 떨어져’, ’출루하면 이기는 거고, 출루 못하면 지는 거야’
‘출루율’, 빌리와 피터가 팀을 리빌딩(Re-Building) 하며 가장 주목했던 부분입니다. 즉 타자가 1루에서 2루까지 살아서 나갈 확률을 말하는데요. 영화 속에서 빌리와 피터는 본인들을 제외하고 당시 거의 모든 전문가와 대립합니다. 같은 예산 안에서 우승 기여도가 높은 ‘히어로 선수’를 바라보는 기존 전문가 집단과, 이에 반해 저평가되어 몸값은 적지만 평균 출류율은 높은 선수들로 팀을 꾸리는 빌리와 피터. ‘일단 살려서 1루로 내보낸다 → 점수를 낸다 → 반복한다’. 우승을 위해 집중했던, 어쩌면 야구의 본질과도 같은 이 둘의 관점은 위 <인셉션>과같이 제게 또 다른 울림을 주더군요.
 
<MONEYBALL> 2011.11.17
<MONEYBALL> 2011.11.17
광고 소재를 만들고, 매체 광고를 집행하는 퍼포먼스 마케팅 업무를 할 때면 항상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 많은 소재 중 과연 어떤 게 평균 이상의 반응을 보일까?’, ‘A/B 테스트는 얼마나 해야 가장 유효할까?’하는 고민일 텐데요. 영화 <머니볼>을 보고, 가끔은 저 역시 단숨에 높은 전환율만 기대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야구에서 1루를 박차고 나가 2루, 3루를 거쳐 홈으로 들어온다면, 매체 광고 역시 리드 타겟에게 노출, 그리고 관심, 클릭이라는 단계를 거쳐야 최종 ‘전환’까지 들어올 수 있는데 말이죠. 혹은 다른 팀원이 기획한 새로운 소재를 돌려보기도 하고요. 이는 ‘기대 반응’에 대해 어느덧 제 스스로 만든 틀에 갇혀, 새로운 관점을 스스로 차단한 건 아닌지 하는 경계심이 들어서인데요. 영화 속에서 ‘야구에는 숫자로 판단이 불가능한 믿음이 존재해’라며 숫자만 쫓는 빌리와 피터에게 혀를 끌끌 차던 그 어르신들이, 혹여 지금 제 모습에서 비치진 않을지 하는 의심을 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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