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대표들은 한 해를 마무리 하며 지난 1년의 회고, 현재 현황,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생각을 주주서한으로 이해관계자(투자자, 임직원 등)들에게 공유하죠. 몇몇 유명 펀드매니저들의 연간 주주서한이 대중적으로 공개(워렌 버핏, 차마스 팔리하피티야 등)되기도 합니다. 이런 주주서한들은 보면 이 사람이 무슨 고민을 했고, 어떤 생각을 갖고 행동을 했으며, 미래를 어떻게 내다보고 있는지 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런 주주서한을 작성하는 분들은 주로 사회적으로 매우 성공했고, 그를 의지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는 비록 제게 의지하는 임직원이나 주주는 전혀 없지만, 이 분들이 매년 작성하는 주주서한 형식은 지난 1년을 회고를 하고 투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미래에 제가 다시 이 글을 읽어 봤을 때, 어떤 생각들은 옳았고, 어떤 내용들은 틀렸는지를 보고 싶습니다. “Store of record”과 “back-test”라는 블로그의 본 취지와 맞게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이번 블로그 준비해봤습니다.
0명의 주주에게
2022년은 모든 경제참여자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시기였습니다. 테크 생태계의 bellwether이 되는 나스닥 지수는 2021년 말 고점을 시작으로 10개월 동안 35% 이상 폭락했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년 이상 간 지속되어왔던, 영원히 지속될 줄만 알았던 저금리 시대 파티에서 시장은 숙취에서 깨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늘 그러듯이 Public Markets의 고통은 천천히, 서서히, 매우 확실하게 Private Markets에도 퍼져나갔습니다.
2022년이 지나고 2023년엔 거짓말 같이 나스닥은 가파르게 회복했습니다. 나스닥은 연초 대비 40% 가량 상승했고 2021년 테크마니아 시절 고점인 16,000 포인트에서 약 10% 차이 밖에 안나는 14,400 포인트 수준까지 회복했습니다.
이는 벤처투자를 포함한 Private Markets엔 매우 긍정적인 시그널입니다. 하지만 다시 시장이 마니아로 돌아가는 것 같아 한 편으론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중장기적인 관점으로 긍정적일 이유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장의 회복은 반갑게 받아들이되 지난 1년 간 숙취에서 깨달은 가치를 잃지 않고 이 신호를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State of Economy & Venture
- 현재 시장이 급상승한 이유는 최근 물가상승률(CPI) 안정화에 따라 연준이 기존 Hawkish 스탠스를 거두고 기준금리를 인하 시킬 것이며 예상보다 견고한 경제 실적을 바탕으로 “soft landing”이 가능할 것이란 시장의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에 따라 금리 변동의 영향이 가장 큰 테크회사들의 주가가 특히 급격히 상승한 것이죠.
- 금리변동에 대해 시장의 해석을 잘 볼 수 있는 미국 국채 Yield Curve입니다. Y축은 현재 금리 현황, X축은 국채 만기 기간을 나타냅니다.
- 현재 연준이 정하는 (1일 만기 기준인) 기준금리는 약 5.3% 수준입니다. 현재 1개월 만기 국채는 약 5.5%네요. 1개월에 대한 Term Premium (0.2%) 수준을 추가한 수치입니다.
- 저희가 여기서 관심 가져야 할 데이터 트렌드는 1개월 만기 이후 longer dated 채권의 금리선이 어떻게 바뀌느냐입니다. 불과 1년 전 현황을 가르키는 오렌지 그래프는 꾸준히 상승선을 그리고 있죠. 반면 파란색 선은 1년 만기까지 서서히 하락하다 2년 만기에서 더 큰 폭으로 하락선을 보이고 있습니다. 시장이 1~2년 내로는 단기금리가 낮아지겠다는 생각을 반영했습니다. 안 그렇다면 1년 만기 국채 금리와 6개월 만기 국채 금리가 비슷한 수준일 이유가 없죠.
- 벤처 생태계의 일원으로써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지켜보는 지표는 10년 국채 금리입니다. 스타트업의 투자기간(및 펀드만기)를 10년으로 잡아놓기 때문에 10년 국채 금리, 즉 risk free rate(무위험이자율)은 “기회비용”과 같습니다. “기회비용”이 높아지면 높아질 수록 위험한 스타트업에 투자할 요인이 적어지죠.
- 제가 우려스러운 것은 최근 10년 국채 금리의 인상 속도입니다. 1년 단위로 단기 금리가 인상된 폭과 장기 금리가 인상된 폭을 비교해보면 차이가 큽니다. 이 포인트로 시장이 알려주는 시그널은 3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시장은 금리가 장기간 동안 인상된 수준을 유지될 것을 전망하고 있습니다. 즉, 제로금리 시절은 (한동안)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 시장은 미국의 10년 국채를 들고 있는 것에 대해 더 큰 보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성장을 위해 마구잡이로 재정 적자를 늘려온 것에 대한 문제지적이라고 생각됩니다. 더 이상 막대한 재정을 풀어 성장을 기대하는 시대는 끝나간다고 보고 있습니다. 미국은 그 동안 기축통화를 가진 경제 대국 입지를 활용하여 “growth at all cost”를 추구했지만, 이젠 청구서가 날라오기 시작했습니다.
- 뿐만 아니라 장기 금리가 올라가는 것은 최근 지정학적 불안감(우크라이나, 가자지구 전쟁 등), 전세계 퍼지고 있는 Isolationist 정책, 사회적, 경제적 극단화 등 커져가는 구조적 리스크를 반영한 수치입니다. 예전처럼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 또는 글로벌 경제 호황에 기댄 투자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 최근 주식시장 상승은 모든 회사에게 골고루 분포된 예전 시절과 달리 극히 일부분의 대기업(Microsoft, Alphabet, Nvidia, Amazon, Tesla, Meta)에 집중되었습니다. 주식시장과 똑같이 벤처시장도 이제는 “지수(index)” 투자가 아닌 “stock-picking”의 중요성이 부각될 것으로 보고있습니다.
지난 1년에 대한 회고
- 2022년 중순 벤처시장에 처음 입문했고 약 1년 반이 지났습니다. 제 성적표를 말하자면 발굴과 투심까지 통과시킨 딜은 총 2건, 최종 집행된 딜은 0건입니다.
- 처음엔 포트폴리오를 늘리고 싶은 욕심으로 제대로 된 Thesis와 Risk Management 없이 딜을 밀어붙이기만 했습니다. 첫 투심은 입사 6개월 만에 미국 Cana라는 “음료수 프린터기” 업체였습니다. 조건부 투자 승인 이후 약 3개월 후 회사는 문을 닫았고 처음으로 “벤처투자는 매우 어렵구나”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 그 이후 많은 시행 착오를 겪으며 리스크 관리, 리서치, 실사 등 심사역의 역할에 대해 배우고 훌륭한 업체의 세컨더리 딜을 소싱하였습니다. 하지만, 투심 통과 직후 통과 소식을 들은 경쟁 하우스들은 룸 확보를 위해 급격히 움직였고, 구주 판매자의 네트워크를 앞세워 저희 물량을 모두 빼았겼습니다. 이젠 데스크탑 리서치와 문서작성 뿐만 아니라 딜 메이킹(deal making)과 네트워킹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 약 1년 반 동안 심사역으로써 남긴 성과는 처참한 “0”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 VC를 입사하여 보다 높은 투심 기대치를 만족시키기 위해 더욱 확실하게 준비하고 공부 해야합니다. 앞으로도 쉬워질 것은 아니지만 이 시기에 벤처시장에 들어온 것은 매우 의미 있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합니다.
2024년 지켜봐야 할 트렌드
제가 최근 관심있게 지켜보는 거시적인 트렌드와 어떤 기회를 눈 여겨 보는지 정리해봤습니다.
Capital Markets Trend
- 이 3가지 분야에서 매력적인 밸류와 안정적인 예상수익률을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1) 세컨더리, 2) 얼리 스테이지, 3) Private Debt
세컨더리
- 2022년엔 Public Market과 Private Market 간 밸류에이션 괴리가 매우 컸습니다. 하지만 현금 런웨이가 고갈 되면서 슬슬 스타트업들은 어쩔 수 없이 Down-Round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또한, 오랫동안 돈이 묶여왔던 VC들도 펀드만기가 다가오면서 할인된 가격에 구주를 매각하려고 애를 쓰고있습니다. 훌륭한 회사에 매우 합리적인 밸류로 투자할 수 있는 세컨더리 기회가 많아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얼리 스테이지
- 최근 그로쓰 스테이지 펀드 실적은 처참했습니다. 최근 상장한 Instacart는 Private Round에서 2021년 3월 $38.5 Billion 밸류를 인정받은 바 있죠. 현재 시가총액은 약 $7 Billion 입니다.
- IPO 시장이 얼어붙은 마당에 LP 투자자들은 AI도 뜨는 마당에 차라리 합리적인 가격에 일찍 투자를 집행하는 쪽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보니 평균 밸류가 많이 떨어진 Series A 이후 라운드와 달리 Pre-Seed, Seed 밸류는 여전히 비싼 수준입니다. AI 회사라고 무조건 수표를 써주는 것이 아니라 명확히 팀, 시장, 프로덕트에 대한 평가를 절차에 따라 진행해야 됩니다.
Private Credit
- 10년 국채가 4.2%인 만큼, 투자자들은 안정적인 방법으로 알파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사모사채에 투자하면 담보도 있고, 안정적으로 8~15% 수익을 돌려받으며 옵션 등으로 업사이드까지 향유할 수 있으니 투자 침체기에도 불구하고 돈이 몰리고 있습니다.
저는 VC 외에 그로쓰 에쿼티까지 검토하다 보니 이 3가지 트렌드를 2024년엔 모두 유심히 지켜볼 생각입니다.
Investment Theme
- 제가 투자 쪽에서 거시적으로 재밌게 보는 트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소비 트렌드 변화
- 2010년대엔 기존 오프라인 쇼핑에서 이커머스으로의 전환이 있었죠. 2020년엔 다양한 재밌는 소비 트렌드가 보여지고 있습니다: 쇼핑의 Gamification, C2C 거래 및 렌탈, 라이브 커머스, AI 드레싱룸 등. 제가 특히 재밌게 보는 소비 트렌드는 “숏츠”입니다.
- 사람들의 집중도는 점점 하락하고 있고 이에 따라 숏츠 특화 SNS 플랫폼이 큰 인기(핀두오두오, 틱톡,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를 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통상 롱폼 비디오 컨텐츠와 달리 광고 삽입과 수치화가 매우 어려워 시청 수는 많다 한들 monetize가 어려운 현황입니다.
- 컨텐츠 소비 트렌드가 완전 숏츠로 넘어오고 있는 지금, 숏츠를 어떻게 커머스와 결합할 지, 브랜드들은 이런 숏츠를 어떻게 활용할지 궁금하고 시장기회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라이프스타일
-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자기가 속한 커뮤니티 내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크죠. 특히, SNS로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Interconnected 된 삶을 살며 자신과 서로를 비교하고 남들이 대신 판단한 기준의 “성공”을 자신을 끼워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 통상적으로 이런 것을 쉽게 사용자에게 부여해주거나 느끼게 해주는 프로덕트, 또는 서비스(피부과, 성형외과, Ozempic 등)이 큰 돈을 벌 수 있죠. 물론 이러한 서비스도 사회에 기여하는 가치가 크나 제가 2024년 관심있는 트렌드는 “wellness”입니다. 최근 주변을 둘러보면 “행복하다,” 또는 “만족한다”라는 얘기를 전혀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 “Wellness”라는 Theme은 오랫동안 존재했고 Noom, Headspace 등과 같은 훌륭한 회사도 배출하였으나 여전히 시장엔 빈 공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불안감이 고조되어 있고, 경제 침체기이며 양극화가 심해지는 지금, 의미있는 프로덕트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B2C AI 전성시대
-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트렌드는 AI입니다. 특히, 2024년엔 AI 어플리케이션의 진정한 상용화를 가능케하는 인프라 확장, 높은 성능의 다양한 AI Foundation Model, 트레이닝 및 인퍼런스 가격 (점차적) 하락 등으로 본격적인 AI B2C 어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AI B2C 회사들을 평가할 때 저는 아래 사항을 고려할 것 같습니다:
- 어떤 방식으로 경쟁자보다 빠르게 유의미한 데이터를 구축할 것인가?
- 직접 모델을 구축할 것이라면 시중의 SOTA 모델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 또는 부족한 이유가 무엇인가?
- 백엔드 역할을 하는 파운데이션 모델이 Commoditized 된다는 가정을 했을 때, 우수한 UI/UX 등과 같이 우리가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가져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Conclusion
- 비록 제게 의지하는 투자자나 임직원은 0명이지만… 올해 생각을 정리하고 내년을 계획할 수 있도록 “2023년 주주서한”을 작성해봤습니다.
- 개인적으론 앞으로도 VC/스타트업 시장은 매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회로 2008년 금융위기 때 그랬듯이 “hobbyist”를 시장에서 클린아웃하고 오히려 더 건강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발걸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비록 전망은 어둡지만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은 매우 많습니다. 2022년 Chamath Palihapitya의 주주서한을 토대로 정리한 블로그에 잘 정리되어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 부탁 드립니다.
- 언제나 말씀 드리듯이 의견, 질문, 피드백이 있으시면 편하게 메일이나 아래 LinkedIn으로 연락 부탁 드립니다 (커피챗도 좋습니다!☕). 특히, (지금이나 미래에) AI, 또는 제가 관심 있게 보는 트렌드와 관련하여 창업을 생각하고 계신 분들과 가볍게 편한 자리로 만나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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