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수안동 주택은 온천천 주변 30평 남짓한 땅에 주택과 사무실을 겸한 주택을 짓는 프로젝트였다. 한 층에 대략 15~18평씩, 박공지붕 아래 다락방까지 4층으로 구성된 소위 작은 땅을 활용한 도심 속 소형주택이다.
수안동 주택 건축주가 집을 짓고자 하는 이유는 매우 간단한 논리였다.
출판사와 사진 작업실로 사용하던 기존 사무실 건물에서 이사 나와야 했고 그럴싸한 사무실을 구하기가 마땅하지 않았다. 그래서 집과 사무실을 함께 사용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출발점이었다. 지금이야 이런 생각들이 일반적인 범주의 아이디어지만, 당시는 꽤 참신한 생각이었다.
주거로 사용되는 아파트는 24시간 중 10시간 남짓 사용하는 공간이고, 그것도 7시간은 잠을 자는 곳이니, 겨우 3시간을 위해 자산의 절반 이상을 투자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사무실 임대료를 집짓기 비용의 대출이자와 비교하여 고려해 볼 때 집과 사무실을 겸할 수 있는 집을 짓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개인 출판사와 사진 작업실이란 직업적 특성도 이러한 생각에 대한 충분한 근거와 타당성이 있어 보였다.
이러한 이야기를 처음 듣고 개인적으로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었다.
이유와 타당성은 충분했지만, 그동안 집짓기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했던 시간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집짓기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너무나 많은 어려움에 비해 집을 짓고자 하는 이유가 너무나 단순하고 다소 무모해 보였기 때문이다.
30평 땅이란 규모 조건도 동원할 수 있는 총예산을 대략 산정하고 공사비와 설계비를 제외한 나머지 비용으로 살 수 있는 땅의 규모를 찾다 보니 30평 땅이 된 것뿐이었다. 지금이야 이러한 도심지 자투리땅의 가치를 충분히 알고 있지만, 그 시절만 하더라도 도대체 30평짜리 땅에 어떤 집을 지을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조차 일반적이지 않은 시절이었다.
당시 건축주 역시 30평 땅에 지어진 주택이 어떤 집일지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과 고민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세상살이는 희한하게도 이것저것 따지는 인생살이보다 다소 모험적일지라도 무엇인가를 성취해 가는 과정이 훨씬 행복한 인생임을 깨닫게 되는데, 부정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상담자는 어엿한 집주인이 되어 있었다.
물론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시작하다 보니 제대로 된 실시설계도면 하나 없이 현장 작업만으로 세부적인 디자인을 결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사실 수안동 주택은 기존 설계안이 이미 있었고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계획안과 공사비의 타당성에 대한 자문을 구하던 중에 갑작스럽게 시작된 프로젝트이다.
작은 땅과 작은 공간의 단독주택은 일반적인 건축 설계와는 사뭇 다른 특성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한정된 예산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도 집을 짓고자 하는 의미와 인식, 목적이 분명했었고 일상의 가치에 대한 소중함을 인지할 수 있는 단단한 생각들이 있었기 때문에 과정에서의 문제점들은 소통과 협의를 통해 합리적으로 풀어갈 수 있었다.
집을 짓는 단순한 이유라고 표현했지만, 집주인 스스로 삶과 삶의 방식 및 가치에 대한 인식이라고 설명해야 타당할 것이다.
집은 결국 삶의 구체적인 생각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대전 하기동 주택은 프로 음악가는 아니지만, 프로 음악가 못지않게 음악 활동이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세 가족을 위한 집이다. 건축주는 일상의 많은 시간을 음악 활동으로 영위하고 있었는데, 아파트에서는 밤늦게 음악을 틀어 놓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으며 간단한 연주나 음악을 매개로 사람들과 왁자지껄한 교류의 장소로써도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녔다.
이러한 이유로 건축주와 처음 만났을 때 기존 아파트를 전세로 주고 인근 단독주택을 전세 얻어 단독주택이란 삶을 체험해 보며, 현실적인 여러 문제점 등도 인지하고 있었다.
집터로 낙점한 장소 또한 그동안 살아왔던 지역과 크게 동떨어지지 않은 비교적 익숙한 지역의 택지개발지구 내 단독주택 필지였으며 무엇보다 직장 출퇴근 시간 등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여러 이유 등도 고려되었다.
하기동 주택은 단독주택 하면 일반적으로 쉽게 연상되는 마당이 있는 2층 주택이란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이러한 배경에는 건축가의 디자인적 혹은 조형적인 형태를 다루고자 하는 문제와 무관하게 건축주의 일상에 대한 해석과 소통의 결과물로서의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신도시 혹은 택지개발지구 내 단독주택 하면 떠올리는 집에 대한 이미지는 잔디가 있는 넓은 마당과 내부 계단과 테라스가 있는 2층 주택을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이러한 집에 살아보면 감당하기 힘든 잔디 관리 문제와 무엇보다 프라이버시 등의 문제로 생각했던 것만큼 마당의 활용도가 많지 않음을 어렵지 않게 인지할 수 있다.
따뜻한 햇볕 아래 뽀송뽀송하게 빨래를 말릴 수 있을 것이란 소박한 희망조차 남의 눈치를 의식해야 하는 현실을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외부 손님이 잦고 음악 공연 및 여러 목적의 모임이 잦은 건축주의 라이프 스타일 등은 도심 택지개발지구라는 환경을 고려할 때 그렇게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하기동 주택을 짓는 생각의 출발점이었다.
ᄃ자 형태의 작은 중정이 있는 주택은 이러한 이유 등을 고려한 생각과 해석의 결과물이다. 중정형 주택은 말 그대로 중정을 중심으로 개별 방들이 에워싸는 형태로 주택의 평면이 구성되어 있다. 통상 이러한 중정형 주택은 비교적 규모가 있는 주택에서 적용되는 유형이지만 하기동 주택의 경우 45평 남짓한 규모의 단층 중정형 주택이다.
쉬운 표현을 위해 중정형 주택이라고 쓰고 있지만 사실 하기동 주택의 중정은 중정을 위한 중정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건축주 삶과 일상을 해석한 결과이지 중정을 위한 주택을 계획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음악 활동을 매개로 한 건축주의 일상은 도심 속 주택에서 프라이버시와 개방성이 동시에 필요한 삶이자 장소라고 생각했다. 프라이버시를 위해 건축물 자체가 대지의 경계를 에워싸고자 의도하였고 남는 공간이 중정이란 형태의 중정이 되어버린 것이다.
전용공간인 거실과 오픈 공간인 중정은 각각 성격이 다른 내부와 외부지만 동일한 데크 레벨 계획을 통해 개방감 있는 확장성을 가지기도 한다. 하기동 주택의 실재 중정의 규모는 한 변이 대략 6.6m 정도이며, 흔히 생각하는 단독주택의 마당은 사실상 없다. 마당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프라이버시가 확보된 개방감 있는 정원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건축주의 일상에 대한 해석이었다.
두 개의 단독주택 사례를 살펴본 바와 같이 집짓기는 단순한 이유와 가치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물론 단순한 이유에서 출발한다고 해서 집짓기 과정이 단순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집짓기의 이유와 목적은 저마다 제각각일 수 있고 집짓기가 시작된 이후 과정에서 생각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 또한 만만치 않다.
집짓기의 결정은 오롯이 건축주의 판단이지만 집짓기를 결정한 후 일련의 과정은 건축주와 건축가의 긴밀한 소통을 통한 과정의 소산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에 따라 혹은 외부 환경에 따라 다양한 상황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어렵거나 풀지 못할 숙제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점은 집짓기는 삶에 대한 소소한 이해이자 조력자와 소통을 통해 만들어 가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행복한 집짓기가 가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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