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선물로 금을 받았다

Jun 10, 2023
생일선물로 금을 받았다

생일선물로 금을 받았다

 

선물이라는 건

내가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있으면 좋은 게 좋다. 필요한 건 내가 사면 되고, 썩 그리 필요한 게 많은 편도 아니다.
 
이번 생일 역시, 무얼 받고 싶냐는 숱한 질문을 받았다. 참 대답하기 어렵단 말이지. 상대방과의 나의 친밀도도 고려해야 하고, 선물을 요구하는 듯한 뉘앙스를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대답의 적절한 균형도 필요하다. 어지간해서는 ‘그냥 아무거나 다 좋아.’라 거나 ‘난 필요한 것 없어.’라는 대답했지만, 그중 한 명은 정말 집요했다. 제풀에 지쳐서 아무거나 이야기해도 괜찮다는 듯이, 쉬지 않고 내게 같은 질문을 했다.
 
며칠을 시달렸을까, 결국 나는 내가 뭐가 필요한지 어떤 걸 갖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친밀도부터 살펴보자. 상대방과 내가 친한가? 둘도 없는 막역한 사이다. 그렇다면 내가 뭐가 필요하지? 정말 없다. 그럼 난 뭐가 갖고 싶지? 음…돈.
 
솔직하게 돈은 늘 갖고 싶지만, 현금을 생일선물로 받고 싶지는 않았다. 모양새도 좀 그렇고. 그리고 나의 깊숙한 마음을 고백하자면 당장 내 손에 쥐여지는 현금은 쓰면 없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무언가를 사기 위한 수단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갖고 싶은 걸 이야기하는 게 맞겠다 싶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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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난 금을 늘 갖고 싶었다.

원자재 주식은 사고 있었지만, 진짜 현물 금을 가지는 건 다른 기분일 것 같았다. 왜 영화에서도 많이 나오지 않은가. 은행 지하 깊숙이 숨겨진 금고에서 강도들이 훔치는 건 현금다발. 그리고 크고, 반짝이고, 속이 꽉 차 묵직할 것 같은 ‘골드바’.
 
결국 난 솔직한 마음으로 ‘금’을 현물로 가지고 싶다고 말했다. 당장이라도 종로로 달려가야 하나 싶었지만, 요새는 세상이 좋다. 앱에서 간편하게 입금하고 물건을 구매한 후, 오프라인 매장에서 수령만 하면 된다. 나는 한국금거래소 ‘금방금방’ 앱을 통해 구매하고, 종로매장에서 받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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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서 쥐어본 내 골드바는

작은 유심칩이었다. 까딱하다간 길 가다 잃어버려도 모를 정도로 작았다. 이게 30만 원씩이나 하는 거라니? 현실 세계의 금이란 이런 건가? 골드바의 무게와 가치가 내 손안에 상충하는 기분이라, 나의 작고 소중한 골드바를 오랫동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가치라는 건 정말 흥미롭다.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이 녹아 있어야 높아진다는 것도 재미있고, 그 양이란 게 상대적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돌아갈 수 있는 양의 가치와, 적은 머릿 수만이 얻을 수 있는 저 유심칩 양의 가치란 흥미로울 수밖에.
 
나는 작은 골드바를 방 한편에 숨겨두었다. 강도가 들어도 훔쳐 갈 수 없게, 가장 평범하고 어찌 보면 가치가 떨어지는 장소에 숨겨두었다. 퇴근 후에는 꺼내어 손에 쥐어도 보지만, 출근길에는 한 번씩 시세를 들여다본다. 오르는 숫자와 가치를 보면서, 과연 이건 소멸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양의 비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건지 고민한다. 깊은 고민을 끌어내 주다니, 좋은 생일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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