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죽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 질문을 받고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부모님이다. 나라는 사람의 탄생과, 가장 취약했을 시기를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원으로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셨다. 지금 죽어선 안되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그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원에 대한 보답을 해드려야 한다는 게 가장 크다. 현재 삶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물론 동시에 이게 삶의 원동력이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순리상, 부모님은 늙으실테고, 약해지실테고, 돌아가실테니까. 그렇다면, 그 다음의 삶의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아니, 오히려 다른 궁금한 점이 생긴다. 살아가는 이유가 꼭 필요한 것인가? 그게 없다면, 의미가 없는 삶인가? 이런 생각을 하던 와중, 경석님께서 새로운 질문을 몇가지 더 해주셨다.
“어떤 노인이 되고 싶은가요?” 이 질문이 눈에 들어왔다. 달라질 순 있겠지만, 지금 생각하는 이상향은 있다. 호기심 많은 노인이 되고 싶다. 때때로 어르신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새로운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어르신분들을 볼 수 있다. 그분들은 순수하게 호기심으로, 재미 있어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질문을 해주신다. 그럼 나는 더 신나서 관련 이야기를 더 한다. 그러면, 어르신은 본인의 경험에 맞추어 또 새로운 관점의 이야기를 해주신다. 쿵짝이 잘 맞는다. 그들처럼 늙고 싶다. 그들의 원동력은 “호기심”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모르는 것에 대한 호기심,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호기심. 나 또한 모든 종류의 호기심을 다 가지고 싶다. 체력이 되는 한 모르는 것을 찾아보는 걸 재미 있어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것을 재미 있어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권위와 관습에 집착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지금의 삶의 과정도 그러하다. 일단 해보고 싶은 것, 궁금한 것들을 해본다. 그리고 진짜 재미 있는지를 해보면서 파악한다. 흔히 말하는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보는 것이다. 그러면 더 잘 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지, 아닌지. 지금의 비교적 젊은 나에게는 직접 찍어 먹어볼 수 있다는 것은 최고의 옵션이다. 그래서 오히려 가끔은 두렵다. 가까운 미래에 생각할게 많아지고, 챙겨야할 게 많아지고 하면 찍어 먹어볼 수 없다는게. 리스크를 생각해봐야 한다는게. 그래서 지금은 최대한 많이 찍어 먹어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거, 좋아하지 않은 것을 남들의 시선에서 듣는게 아니라, 내가 직접 판단하고자 한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고 있다. 찍어먹는 재미가 있지만, 가끔은 자기 의심과 불안의 연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것이라서 후회도 없고, 24시간 중 몇 분 정도는 짜릿하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지금 내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대부분은 말렸다. 하지만, 내가 판단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아직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내 선택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계속 맞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그리고 하고 싶은걸 하면서 호기심 많은 사람으로 늙고 싶다.